“일 하기 바빠 죽겠는데… 2배속으로 재생해 놓고 할 일 해야죠.” 서울의 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윤모(34)씨는 회사에서 성희롱 교육을 받으라는 독촉을 받고 황급히 온라인 강의를 들었다. 하지만 일이 바쁜 윤씨에게 성희롱 교육은 귀찮은 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윤씨는 익숙하게 성희롱 예방 동영상 강의를 2배속으로 재생한 뒤 하던 일을 계속 해 나갔다. 윤씨는 “솔직히 성희롱 교육을 심각한 문제라 여기고 주의 깊이 듣는 동료는 본 적이 없다”며 “이런 식의 교육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열풍으로 직장 내 성희롱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잇지만, 이를 근절할 성희롱 예방 교육에 대한 관리 감독이 부실해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25일 고용노동부의 성희롱 예방교육 대상 사업장 점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간 전국 29만여개 대상 사업장 중 강사자격 확인 등 현장 실태점검 사업장은 1,596개(0.5%)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남녀고용평등과 일ㆍ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13조 및 시행령 제3조에 따라 10인 이상 사업장은 연 1회 이상 강사 또는 동영상 등 교육자료를 통해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이를 미실시한 사업주는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정부가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과태료를 500만원으로 높이는 등 처벌 수위를 높이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지만, 실제 사후관리가 거의 되지 않아 형식적인 교육에 그치고 있다. 사후관리가 잘되지 않다 보니 성희롱 예방 교육 내용이 부실한 경우가 다반사다.
직장인 박모씨는 성희롱 교육을 받다 황당한 얘기를 겪었다. 교육강사라는 사람이 교육을 하며 성희롱 피해자가 안 되려면 짧은 치마를 입지 말라는 등 성차별 발언을 서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직장인 이모(28)씨도 “성희롱 교육을 했는데, 남자 상사들이 오히려 교육을 받은 뒤에도 성희롱성 발언을 하는 걸 보고, 도대체 교육을 왜 하는지 싶었다”고 말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성희롱 예방 교육 외에도 남녀고용평등, 일 가정 양립 등 검검해야 할 것이 수없이 많다”며 “1,000여명에 불과 인원으로 30만개에 달하는 사업장을 모두 관리·감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사업장에 대한 관리가 어려운 만큼 실효성 있는 성희롱 교육을 위한 사업주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미정 여성정책연구원 여성권익연구센터장은 “성범죄 사건이 조직 내에서 발생하면 이로 인한 피해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만큼 사업주가 책임의식을 갖고 성희롱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