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이 1조원대 글로벌 수주전에서 선두로 치고 나섰다. 일감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독보적 액화천연가스(LNG) 관련 기술력을 바탕으로 우위를 점한 것이다. 지난해 비슷한 규모의 물량을 통째로 중국에 내줬던 현대중공업이 최종계약을 따내며 설욕에 성공할지 주목된다.
26일 조선 업계와 외신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프랑스 선사인 CMA CGM으로부터 1만4,0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컨테이너선 12척(추가 6척 옵션 포함)을 두고 막바지 협상을 벌이고 있다. 해당 선박에는 벙커C유와 LNG를 모두 사용하는 이중 연료(dual-fuel) 시스템이 장착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중 연료 엔진이 탑재되면 척당 가격은 최대 1억3,000만달러로 총 계약 금액은 약 16억달러까지 치솟는다.
일감 부족에 허덕이는 현대중공업으로서는 놓쳐선 안 될 기회다. 지난 2015~2016년 수주절벽 여파가 올해 본격화하면서 순환휴직까지 단행하며 허리띠를 졸라맨 상황이다. 특히 빈 조선소를 채웠던 한 축인 해양플랜트 발주가 2014년 이후 전무한 가운데 조기 경영 정상화를 위해서는 상선 부문에서 대규모 수주가 절박하다.
저가 입찰로 한국 조선사를 압박하던 중국이 기술 경쟁력마저 치고 올라오는 상황에서 반드시 사수해야 하는 계약이기도 하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하반기 이중 연료 시스템을 갖춘 2만2,000TEU 컨테이너선 9척을 중국 조선소에 모두 내주며 체면을 구긴 바 있다. 최대 1조6,000억원이 넘는 수주 금액 자체도 아깝지만 그토록 국내 조선사가 독보적 기술력 보유하고 있다고 자부하던 초대형·고부가가치 선박 수주 경쟁에서조차 중국에 추격을 허용했다는 점에서 업계에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현대중공업이 이번 계약에 총력을 기울이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국내 조선사가 보유한 이중 연료 기술이 여전히 비교 우위에 있음을 알릴 절호의 기회를 잡은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등 조선소가 이중 연료 시스템을 갖춘 선박을 수주해놓고도 국내 조선사에서 관련 기자재를 사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여전히 이중 연료 엔진을 사용하는 LNG 추진선 부문에서는 한국 조선소가 독보적인 기술력을 지니고 있다는 걸 보여줄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이 시장에 차별화된 기술력을 다시 한 번 증명해 보인다면 신규 수주 계획도 순조롭게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업황이 바닥을 친 가운데 국제해사기구(IMO) 규제로 이중 연료를 탑재한 선박 시장 성장세가 특히 가파를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2년여 남은 규제 시행 전까지 선사들은 △연료를 유황 성분이 낮은 저유황유로 교체하거나 △기존 선박에 스크러버를 설치하거나 △LNG 추진선으로 선박을 교체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스크러버는 크기가 커 선박 공간 활용이 줄어들고 저황유는 가격이 비싸 비용 부담이 늘어난다”며 “현대중공업이 이번 계약을 따낸다면 LNG 추진선 교체를 고민하는 선사에도 긍정적인 인상을 남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