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들의 치킨게임이 시간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가격을 낮춰 고객 풀(Pool)을 최대한 확보해야 한다는 전략 때문이다.
증권 거래 수수료 무료, 역마진 특판 상품 판매 등에 따른 단기 손실보다 고객 플랫폼 확대로 연계 상품 판매가 중장기적으로 더 이익이라는 복안이다.
2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증권사들은 한시적으로 진행하던 주식 거래 수수료 무료 이벤트를 올 들어서도 계속 진행하고 있다. NH투자증권은 국내 주식 수수료 10년 무료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가입기간은 2월 말까지다. 미래에셋대우는 2025년까지 수수료 무료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삼성증권과 한국투자증권도 각각 3년, 5년 거래 수수료 무료 이벤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역마진 수준의 금융상품 판매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중순부터 국내 증권사들은 역마진 수준의 연 3~5%대 환매조건부채권(RP)를 앞다퉈 판매하기 시작했다. 하나금융투자는 지난해 9월부터 연 5% 금리를 주는 RP의 판매를 완료했다. 당시 RP 수익률이 연 1.5% 수준이었기 때문에 하나금투는 해당 RP 판매를 통해 3.5% 이상의 역마진을 볼 수밖에 없다. RP를 팔면 팔수록 손해인 것이다. 한국투자증권도 지난해 9월 신규 고객을 대상으로 91일간 연 3% 이자를 주는 RP를 출시한 바 있다. 출시 직후 5,000억원 규모의 RP가 완판됐다.
금융투자업계가 이처럼 손실을 기꺼이 감수하고 가격 인하 전쟁을 하는 이유는 고객 유치 때문이다. 증권사 간 경쟁이 심해지면서 상품들끼리 큰 차별화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손해를 보면서 제 살 깎아 먹기 경쟁을 하는 것은 고객 유치 때문”이라며 “수수료 수익이 줄어드는 것보다 신규 고객이 늘어나면서 중장기 이익 증가가 더 크다고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실제 지난해 평생 주식 거래 수수료 무료 이벤트를 진행한 NH투자증권은 이벤트 이후 고객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4·4분기 NH투자증권의 1억원 이상 고액자산가 고객 수는 8만7,383명으로 전 분기 대비 7.4% 증가했다. 또 지난해 하반기 비대면 계좌 수는 14만2,000개로 2017년 초(3만2,000개)와 비교해도 4배 이상 크게 늘었다. NH투자증권의 모바일 나무(NAMUH) 이용자가 늘어날수록 회사의 금융상품 수요 증가와 신용융자 이용 금액도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이 같은 혜택 증가에 이익만 얻고 발을 빼는 체리피커도 늘어나고 있다. 특판 RP에 가입하고 만기가 끝난 뒤 자금만 그대로 빼는 일이 빈번히 발생하는 것이다. 증권사들도 이러한 체리피커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수수료 무료와 역마진 특판 이벤트를 그만둘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체리피커 최소화를 위해 여러 옵션을 걸고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유진투자증권은 무료 수수료 이벤트를 진행하며 20일 이내 타 증권사에서 2개 이상 신규 계좌를 개설한 고객을 이벤트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이밖에 이벤트를 진행하는 주요 증권사들도 최근 12개월 장기 미거래 고객, 비대면 신규 계좌 개설 고객 등 자격 요건을 특정하면서 체리피커들을 방지하는 대책도 동시에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