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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초점] 최일화는 왜 ‘성추행’ 사실을 자백했나...긴박했던 3시간을 말하다

미투 가해자 첫 고백 vs 꼼수

미완의 ‘성추행’ 자백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25일 최일화 한국연극배우협회 이사장이 성추행 사실을 고백한 기사가 나간 뒤, 하루도 지나지 않아 과거 성폭행 범죄가 밝혀졌다.

사과문 기사가 나온 뒤 최 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폭로가 나와 자진 고백에 대한 반응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선제 대응으로 읽혀지는 기사를 ‘꼼수’로 보는 시각 역시 존재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최일화의 성추행 사실 고백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몇 개월 전 최씨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제보를 받은 건 미투(metoo. 나도 당했다)운동이 확산되기 전이었다. 피해자는 오래 전 상처를 꺼내놓기까지 힘든 하루 하루를 보냈다고 했다. 그럼에도 이 사실이 언론에 밝혀지는 건 극구 싫다고 했다. 피해자가 원치 않는 이상 기사화 하긴 힘들었다.

/사진=sbs/사진=sbs


그렇게 몇 달이 흘렀고 ‘미투’ 운동으로 연극계 거장으로 불린 연출가 이윤택과 오태석 등의 성폭력 파문, 배우 이명행, 조재현, 오달수 등의 성추행 사건이 연이어 언론에 보도됐다. 피해자가 조금 더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조심스럽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성추행보단 성폭력이 더 무거운 범죄’라는 일반적인 상식하에, ‘최초 고백에 언급된 성추행 피해자가 추후에 밝혀진 성폭행 피해자보다 상처가 덜 할 것이다’는 짐작은 애초에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피해자가 겪었을 그동안의 고통은 감히 제 3자가 생각할 수 없는 정도의 강도였다. 최씨의 이름 자체를 말 하는 것, SNS에 글을 올리는 것 조차 가슴이 떨리고 두려워서 올리지 못한다고 했으니.

가해자는 절대 피해자의 직접적인 증거를 들이밀기 전에는 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특성을 알기에, 최씨 역시 성추행 사실을 바로 인정하지 않을거란 예감으로 전화기를 들었다.

예상은 빗나갔다. 단도직입적으로 성추행 사실에 대해 묻자, 최일화씨는 바로 ‘죄’를 인정했다. 그는 “저와 연루된 게 있다면 자진해서 신고하고 죄를 달게 받겠다. 오로지 죄스런 마음 뿐이다”고 말했다. “협회장직 및 모든 배우 활동을 내려놓겠다”고도 말했다. 그는 “미투 운동 이후 하루 하루 두려움 속에 지내고 있다. 며칠 전에는 쓰러져서 병원에 가기도 했다. 그만큼 심적인 죄책감이 컸다”고 고백했다.


최씨가 인정하지 않았다면, 구체적으로 피해자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피해 사례를 하나 하나 설명해야 했다. 또한 가해자와 피해자를 대면하게 해서 사실 관계를 하나 하나 밝혀야 했다. 이 모든 건 피해자가 절대 원하지 않는 최악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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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일화 성추행 고백’이란 기사는 그렇게 나오게 됐다. 무엇보다 피해자를 위한 선택이었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기사를 쓰는 게 기자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였기에. 피해자는 기사 속에서 자신을 유추할 수 있는 그 어떤 설명도 나오는 걸 원치 않았다. 이 점은 최씨 역시 동의한 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진해서 사과 입장을 전한 것으로 해주길 바랐다. 또한 기사 안에 구체적인 성추행 사실을 조목 조목 설명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까진 미완의 ‘성추행’ 사실 자백 부분 설명이다. 완전한 자백이 아닌 이유는 이후 소속사의 미흡한 대처 때문이다. 최씨와의 통화 이후 소속사는 급히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와 만나자고 했다. 하지만 이미 ‘최일화씨가 성추행 사실을 인정했다. 소속사 측과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거절했다. 궁지에 몰리자 소속사 측은 피해자가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밝힐 것을 요구했다.

소속사와 이야기 할 게 아닌 최씨와 직접 통화하겠다고 전했다. 그렇게 통화를 하던 중 피해자가 누구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그리고선 소속사측이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범했다. 최씨를 통해 피해자가 누구인지 알게 된 소속사 측이 피해 당사자와 통화를 시도한 것. 절대 지워지지 않는 끔찍한 상처로 남아있는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어, 당시 상황을 질문했다고 했다. 그리고선 당사자 분은 ‘기분 나쁜 정도였다’는 반응이었다“고 여러 언론에 밝혔다. 기가 찰 노릇이었다. 이 부분에서 피해자는 몇년간 꾹꾹 눌러놓은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고 했다. 피해자의 상처를 제 3자가 전화로 물어봤다는 것, 피해자의 상처를 마음대로 재단했다는 사실에 기자 역시 분노했다.

점점 성추행 사실 자백이 아닌 성추행 2차 폭력의 양상으로 흘러갔다. 당사자와 소속사는 ‘사과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지만 이 모든 사실이 밝혀지지 않았으면 하는 얄팍한 마음이 작용했기 때문 아닐까. 이렇게 되면 피해자를 위해 사과하는 게 아닌,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덜기 위한 보여주기식 사과만이 될 수 있다는 걸 모르지 않았으리라.

“‘성추행 피해자의 상처를 조금이나마 줄여주고 싶었다’는 말은 다 거짓이었냐” “피해자에게 사과든 회유든 연락을 하는 행동이 다시 한번 상처 주는 일인 걸 모르진 않지 않냐”고 따져 물었다. 최씨는 “제가 생각이 짧았다. 아프신 어머님이 떠올라 좀 더 발표 시기를 늦추고 싶었던 나쁜 마음이 생겼다. 다시는 피해자에게 연락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최일화 성추행 고백 단독 기사가 나간 뒤, 25년 전 신시라는 극단에 들어가서 ‘애니깽’이라는 작품을 하던 중 성폭행을 당했다는 댓글이 달렸다. 폭로 글의 여파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최씨는 진정성 없이 사태를 벗어났다가 논란만 키운 셈일까. 다만 처음부터 자신의 죄를 인정했고, 약 3시간 동안 수차례 통화를 하면서 성추행 사실을 회피하진 않았다.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하는 문제가 있다면 비슷한 사건이 수차례였다는 점.

피해자가 원하는 건 최씨의 범죄행위가 공론화 되는 것이었다. 공론화 되지 않고선 절대 자신의 행동이 죄 인지를 모를 것이다는 판단도 한 몫했다.

최일화는 이번 성추문 사건으로 다음달 21일 첫 방송 예정인 MBC 드라마 ‘손 꼭 잡고, 지는 석양을 바라보자’는 물론 모든 드라마와 영화·광고, 한국연극배우협회 이사장직, 세종대 교수직 등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현재 한국연극배우협회 홈페이지는 폐쇄돼 열리지 않았다. 25일 이후 최일화씨는 일체 연락을 받지 않고 있다. 법의 심판을 받고, 진정으로 사과하고 죄를 뉘우치며 하루하루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방법일 듯 하다.

정다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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