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대통령실

文 대통령 첫 대구 방문...“2·28 민주운동이 촛불혁명의 시작”

■2·28 국가기념일 지정 후 첫 방문

“2·28 운동, 4·19 혁명의 기폭제 돼”

“대구-광주 ‘달빛 동맹’ 연대·협력 힘으로 2·28 정신 살려내”

“산업화의 본거지가 대구” 지역 띄우기도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오전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2ㆍ28 민주운동 첫 기념식 참석에 앞서 대구 달서구 2·28 민주운동기념탑 광장을 찾아 2·28운동, 3·15의거, 4·19혁명, 5·18운동 관계자 및 당시 참여했던 학교의 학생들과 함께 묵념하고 있다. /연합뉴스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오전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2ㆍ28 민주운동 첫 기념식 참석에 앞서 대구 달서구 2·28 민주운동기념탑 광장을 찾아 2·28운동, 3·15의거, 4·19혁명, 5·18운동 관계자 및 당시 참여했던 학교의 학생들과 함께 묵념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대구 2·28 민주운동이 촛불혁명의 시작”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28일 대구에서 열린 2·28 민주운동 기념식에 참석해 “촛불혁명을 통해 국민이 권력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다시 증명했다”며 “돌이켜보면 그 까마득한 시작이 2·28 민주운동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로부터 우리는 민주주의를 향한 숭고한 여정을 시작했고 6월 민주항쟁으로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냈으며 촛불혁명으로 마침내 더 큰 민주주의에 도달했다”고 평가했다.

대구 2·28 민주운동은 1960년 2월 28일 이승만 당시 대통령 독재에 항거에 일어난 민주화운동으로 이후 4·19 혁명과 이 전 대통령 하야로 연결됐다. 지난 6일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현직 대통령의 기념식 참석은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18년 만이고 국가기념일 지정 이후의 방문은 처음이다. 문 대통령의 대구 방문도 취임 이후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엄혹했던 시절 바위에 계란치기 같았을 최초의 저항(이었다)”며 “하지만 학생들은 두려움을 떨치고 거리로 나섰다”고 당시를 평가했다. 그러면서 “그 용기와 정의감이 한국 현대사의 물줄기를 바꿔놓았다”며 “당시 한 신문은 ‘천당에서 만나자’는 결연한 악수를 하고 헤어진 학생 대표들의 모습을 전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것이 광복 이후 최초의 학생민주화운동, 2.28 민주운동”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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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은 “대구 학생들의 외침이 숨죽여있던 민주주의를 깨웠다”며 “전국 곳곳에서 학생들의 항거가 잇따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28 민주운동은 마치 들불처럼 국민들의 마음속으로 번져갔다”며 “마침내 3.15 의거와 4.19 혁명의 기폭제가 됐다”고 역설했다. 그는 “대한민국이 국민의 힘으로 독재를 무너뜨린 첫 번째 역사를 쓰는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이날 문 대통령은 지역간 연대와 협력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2·28 운동은 최초의 민주화운동이었지만 오랜기간 걸맞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며 “민주화운동으로 법적 정통성을 확보한 것도 50년 만인 2010년에 이르러서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국민의 연대와 협력의 힘으로 2·28 정신을 온전히 살려냈다”며 “그 바탕에는 2·28 민주운동과 5·18 민주화운동의 상호교류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달빛동맹이라는 이름으로 대구와 광주가 2·28 민주운동을 함께 기념했다”며 “대구시민과 대구시, 지역정치권이 추진해온 국가기념일 지정이 드디어 국민적 공감과 지지를 넓혀나갈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할 많은 도전을 이겨나가는데 연대와 협력 정신이 나침반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문 대통령은 대구·경북 띄우기에도 나섰다. 문 대통령은 “대구경북은 대한민국에서 독립유공자가 제일 많은 곳”이라며 “민주항재이 본거지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도 대구경북은 선비정신의 본거지”라며 “고루한 것이 아닌 새로움과 정의로움을 추구하는 정신이며 그 정신이 반독재 민주운동을 낳았다”고 추켜세웠다. 문 대통령은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은 외환위기 때 금 모으기 운동으로 이어졌다”며 “낙동강 방어전선으로 대한민국을 지킨 보루가 됐던 곳도, 경제발전을 이끈 산업화의 본거지가 됐던 곳도 이곳 대구”라고 강조했다.

이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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