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정책

[생산성 향상 어떻게]500대기업 43% 호봉제...임금체계 '시간'보다 '성과' 보상으로

■근로시간 단축, 이젠 생산성이다 <하>

실질임금 1.66% 증가할동안

노동생산성은 0.3%↑ 그쳐

교육 등 소프트 인프라 구축

고용중심 정책 대혁신 필요



전원장치를 만드는 중소기업 A사는 근속연수대로 월급이 올라가던 호봉제를 지난 2015년 전격 성과연봉제로 개편했다. 경쟁력을 높이려면 우수 인력을 확보해야 했고 그에 합당한 보상체계가 필요해서다. 기본급을 포함해 11개 항목으로 구성된 복잡한 임금체계는 기본급 등 7개로 단순화하고 성과에 연동시켰다. 인건비 절감 목적이 아닌 생산성 향상을 위한 조치로 직원들의 협조가 필요했기에 기존 임금수준은 유지했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개편 1년 만에 매출액이 352억원에서 481억원으로 30% 이상 뛰어올랐고 일자리도 늘었다. A사 관계자는 “임금이 단순해지고 성과가 보상과 연계된다는 믿음이 직원들에게 동기를 줬다”고 설명했다.

1일 한국경제학회에 따르면 생산성본부 자료를 토대로 2009~2016년 1인당 노동생산성과 임금증가율을 분석한 결과 전 산업 실질임금이 7년간 연평균 1.66% 증가할 동안 노동생산성은 0.38% 오른 데 그쳤다. 임금이 오르는 만큼 생산성이 함께 따라가지 못했다는 얘기다.


‘저생산성-고임금구조’는 그간 한국 경제 저성장의 한 원인으로 꼽히는데 여전히 호봉제를 고수하는 후진적인 임금체계에서 비롯된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해 500대 기업을 조사한 결과 전체의 43.1%가 호봉제를 유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능력에 기반한 직능급을 도입한 곳은 전체의 34.5%, 일의 가치를 따지는 직무급을 적용한 곳은 13.5%에 불과했다. 숙련도나 일의 효율성을 배제한 채 오래 다녔다는 이유만으로 더 많은 봉급을 주다 보니 직원들은 굳이 열심히 일할 이유를 찾지 못했고 회사는 장기근속자 관리에 많은 인건비를 쏟아부었다.

특히 이런 체계는 같은 사업장 내 임금 격차를 높여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강화하고 비정규직 양산과 세대 갈등까지 유발했다. 2014년 기준 근속기간 1년 미만 근로자와 20~29년 근로자의 임금격차는 한국의 경우 4.04배로 독일(1.80배)이나 영국(1.60배), 프랑스(1.54배), 유럽 평균(1.56배)을 압도했다.


이런 모순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주당 법정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타결되자 임금체계 개편은 더 이상 도전 과제가 아닌 생존조건이 됐다는 목소리가 높다. 기업이 짧은 시간에 시장을 압도할 혁신 제품을 만들거나 생산능력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기 어려운 만큼 임금체계를 고쳐 생산성 극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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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시간이 줄더라도 생산성은 올라갈 수 있다는 근거는 많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 2004년부터 차례로 주5일 근무(주 40시간)제를 도입한 사례 분석 결과 이전(주 44시간)보다 노동생산성이 1.5% 올라갔다. 시간 때우기 식으로 느슨하게 업무가 이뤄졌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박윤수 KDI 연구원은 “효율적으로 짧게 일하는 데 보상해야 한다”며 “투입(근로시간)이 아닌 산출(생산량)에 보상하도록 임금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임금체계 개편이 생산성 향상을 위한 당면 과제라면 중장기적으로는 무인화가 가속화하는 4차 산업혁명에 적합한 산업구조로 탈바꿈하고 개인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는 교육 등 인프라를 갖춰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표학길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한국경제학회에 기고한 보고서에서 “정보통신기술(ICT) 생산 부문은 대표적인 노동절약적 생산 부문”이라며 “4차 산업혁명은 이 같은 생산 형태 변화를 이끄는 만큼 고용 중심의 거시경제 목표를 생산성 향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적은 인력으로 높은 부가가치를 내는 산업이 중심으로 떠오르는 상황에 고용만 붙잡고 있다가는 시장이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생산성은 떨어지는데 인건비만 늘어나는 비정상적 기업들에 대한 산업 간, 산업 내 구조조정 촉진도 선결 조건으로 꼽힌다.

교육과 제도 같은 소프트 인프라 구축을 통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인재를 양성하는 것도 숙제다. 비단 근로시간 단축 때문이 아니라도 심각한 저출산·고령화 추세를 고려할 때 한국의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려면 결국 사람의 역할이 중요하다. 성장률의 토대가 되는 총요소생산성을 구성하는 요소에는 기업가정신이나 정치·경제·사회 제도의 선진화, 기초 연구개발(R&D) 투자에 의한 무형자산 축적 등이 포함된다. 모두 인적자본이 좌우하는 부분이다. 전현배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국의 총요소생산성이 전체 경제성장(총산출)에 기여하는 비율은 1996~2014년 7.13% 불과하지만 일본과 프랑스 등은 20%대, 미국은 64%에 달한다”며 “성장구조를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설명했다.

세종=임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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