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실언이 정권의 핵심 정책 중 하나였던 ‘일하는 방식 개혁’의 발목을 잡았다. 아베 총리가 기업·근로자 간 협약에 따라 출퇴근시간을 유연화하는 ‘재량노동제도’가 근로시간 연장과 상관없다고 주장하며 ‘가짜 데이터’를 근거로 제시한 사실이 일파만파 논란을 일으키면서 정부는 결국 관련 입법을 철회했다. 야당은 기세를 몰아 이번 사태를 정치쟁점화하며 맹공을 퍼붓고 있어 일각에서는 온갖 악재에도 버텨온 아베 총리의 ‘최장수 총리 등극’에 또 다른 장애물이 생겼다는 관측이 나온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1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해 올해 정기국회 기간에 제출할 예정이었던 ‘일하는 방식 개혁’ 법안에서 재량노동제 대상 확대정책을 전면 삭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일하는 방식 개혁’은 경직된 일본의 노동시장을 유연근로제 도입 등으로 개혁해 생산성 향상을 도모하는 아베 정권의 핵심 정책이다.
아베 총리는 “(후생노동성의 재량노동제 관련 자료를) 감시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초래된 것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해 ‘데이터 조작 사건’과 자신의 실언이 정책 추진의 장애물로 작용했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야당과 노동계는 재량노동제가 확대 적용되면 기업이 야근수당 등 초과근무 비용을 지출하지 않고 근로시간만 늘리는 ‘꼼수’가 성행할 것이라고 지적해왔다. 아베 총리는 지난 1월 야당 의원의 관련 질문에 “재량노동제 근로자 근무시간이 일반노동자보다 짧다는 데이터도 있다”며 후생노동성의 자료를 제시했지만 실제로는 사실무근으로 드러났다.
이후 야당을 중심으로 “자료도 확인하지 않고 법안을 추진한다”는 비난이 들끓었고 급기야 ‘일하는 방식 개혁’ 추진에 유리하게 기재된 조사자료들까지 대량으로 발견됐다. 아예 법안이 엎어질 가능성까지 제기되자 아베 총리는 발언을 철회하고 거듭 사과했다. 그럼에도 여론이 진정되지 않자 결국 ‘재량노동제’를 분리 처리하기로 가닥을 잡은 것이다.
지난해 총선에서 자민당이 단독 과반을 확보한 후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야당은 이번 기회를 ‘아베 1강 견제’의 기회로 활용하기 위해 똘똘 뭉치고 있다. 입헌민주당·희망의당 등 야 6당은 연봉 1,075만엔(약 1억원) 이상의 고소득 전문직에게 시간외근무수당을 지불하지 않도록 하는 ‘고도 프로페셔널 제도’ 역시 근로시간 연장을 위한 것이라며 자민당에 법안 삭제를 요구하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은 이번 논란이 아베 총리의 연임계획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했다. 아베 총리는 오는 9월 총리 연임의 관문인 자민당 총재선거를 앞두고 있지만 당내에서 여론을 다독이기 위해 아예 ‘일하는 방식 개혁’ 법안 추진을 유예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어 정권에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구나 재량노동제 분리 처리에 대해 게이단렌 등 자민당의 주요 지지층인 경제계에서도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