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1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열린 3·1절 기념사에서 역사 왜곡을 일삼고 있는 일본 아베 신조 정부에 대한 비판의 강도를 높였다. 반면 북미대화를 중재하며 비핵화 노력을 기울이는 점을 고려한 듯 북한에 대한 언급은 자제했다. 역대 대통령들이 기념사에서 일본에 대한 비판과 북한의 태도변화를 거의 같은 분량으로 할애한 것과는 차이가 있다.
3·1절 행사는 진보·보수 정부 구분 없이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려왔다. 관례를 깨고 장소를 바꾼 배경에 대해 문 대통령은 “박제화된 기념식이 아니라 독립운동의 현장에서 역사와 함께 살아 숨 쉬는 기념식을 하고자 이 자리에 모였다”고 소개했다.
문 대통령이 행사 장소까지 파격적으로 바꾸며 독립운동정신을 새삼 환기한 이면에는 외교안보 및 정치적으로 적지 않은 의미가 녹아 있다. 우선 이르면 오는 4~5월 무렵으로 전망되는 방일이나 한일 정상회담을 겨냥해 양국 간 첨예한 갈등 현안인 역사와 영토 문제에 대해 외교적 타협 없이 원칙에 입각해 임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기념사를 통해 독도 영유권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내비치며 양보가 없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 같은 문 대통령의 메시지를 아베 총리가 어느 정도까지 받아들이고 호응할지 여부에 따라 문 대통령의 방일 시기가 2·4분기 내에 이뤄질지, 정상회담을 연다면 과거사 의제를 테이블에 어느 수준까지 올릴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이날 독도에 대해 “독도는 한반도 침탈과정에서 가장 먼저 강점당한 우리 땅으로 우리 고유의 영토”라며 “일본이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반성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위안부 이슈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가 ‘끝났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전쟁 시기의 반인륜적 인권범죄 행위는 덮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아베 총리가 “위안부 합의는 1㎜도 움직이지 않는다”며 반성의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 작심 비판한 것이다. 이 같은 한일 정상 간 입장차를 감안할 경우 당분간 한일관계는 답보상태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3·1절과 건국 100주년을 맞이하는 내년을 평화와 번영의 새 출발점으로 삼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문 대통령은 “앞으로 광복 100년(2045년)으로 가는 동안 한반도 평화공동체와 경제공동체를 완성해야 한다”며 장기적인 청사진도 제시했다. 이는 연내에 어떻게 해서든 남북관계 발전과 북미대화를 이뤄내 내년까지 북한 비핵화의 초석을 마련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풀이된다.
미국이 북미대화의 문턱을 낮추고 이에 호응해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내비친다면 한반도 평화 작업이 속도를 낼 수 있다는 기대감도 반영하고 있다. 다만 북한 및 주변국과 한반도 안보 문제를 놓고 협상 테이블에 올라야 할 우리 정부가 내년이라는 시한을 먼저 공개적으로 제시하며 우리 카드 패를 꺼내 보인 것이 자칫하면 상대방에 대한 협상력 약화로 이어질 우려도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