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이사람-이효승 태흥영화사 전무] "장애를 넘은 열정, 국민들 응원 받게된다면 그걸로 만족해요"

장애인아이스하키 소재 다큐 제작

우연히 알게된 장애인아이스하키

무작정 연습장 찾아 훈련 지켜보며

선수들 밝은 에너지에 "만들어보자"

투지·눈물 짜내는 감동신화보단

멈추지 않는 희망과 꿈 보여줘

관객들도 행복 재발견 기회 될것

'우리는 썰매를 탄다' 7일 개봉

태흥이 14년만에 내놓는 신작

사전 시사회부터 벌써 입소문

영화 ‘우리는 썰매를 탄다’의 제작책임인 이효승 태흥영화사 전무이사. 포스터 앞에 선 그가 입은 티셔츠는 지적장애 어린이들의 재능기부 작품으로 제작됐고 영화 주인공인 파라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선수들과 하나씩 나눠입었다. /송은석기자영화 ‘우리는 썰매를 탄다’의 제작책임인 이효승 태흥영화사 전무이사. 포스터 앞에 선 그가 입은 티셔츠는 지적장애 어린이들의 재능기부 작품으로 제작됐고 영화 주인공인 파라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선수들과 하나씩 나눠입었다. /송은석기자




“장애인 아이스하키라고도 부르는 그 종목, 이름이 뭔지 아십니까?”


초면에, 의자에 채 앉기도 전에 그가 던진 질문이다.

“아이스슬레지하키입니다. 장애인 아이스하키가 아니라 그게 정식 명칭이었습니다. 오는 9일 개막하는 평창동계올림픽패럴림픽에서부터는 ‘파라아이스하키’로 이름이 다시 정리됐고요. 패럴림픽의 앞 글자에서 ‘파라(para)’를 따와 붙였으니 이제 사람들이 한결 기억하기 쉬워졌습니다.”

사람을 잘못 찾았나 싶었다. 영화제작사 관계자인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어디 장애인체육회 지회장과 마주한 것 같다. 말 끊을 틈도 없이 장애인스포츠와 아이스하키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놓는 이 사람은 이효승(54·사진) 태흥영화사 전무이사다. 그는 7일 개봉하는 영화 ‘우리는 썰매를 탄다’의 제작책임자다. 영화는 몇 번이나 이름을 강조하며 한 자 한 자 말한 그 파라아이스하키 선수팀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다.

‘우리는 썰매를 탄다’는 임권택 감독을 ‘국민감독’으로 세우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제작자 이태원 대표가 이끄는 태흥영화사가 제작했다. 지난 2004년 개봉한 임권택 감독, 조승우 주연의 ‘하류인생’ 이후 14년 만에 내놓은 ‘태흥’의 영화다. 그런데 비상업적 영화라 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그것도 비인기종목을 넘어 인지도 낮은 장애인 아이스하키가 소재다. 영화가 나오게 된 발단이 바로 이효승 전무다. 우연찮은 시작이었다.

“2011년 초쯤 지인들 모임에 장애인아이스하키협회 관계자들이 나오셨어요. 저도 그날의 대화에서 그 종목의 존재를 처음 알았죠. ‘그 선수들은 어디서 연습 하냐’고 물었죠. 강원도에서 연습한다는 얘기를 듣고 무작정 경기장으로 갔습니다. 강원도청 연습장이었는데요. 경기장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가장 충격적이었습니다. 선수들이 몸을 낮춰 썰매를 타고 아이스하키를 한다는 사실에 놀란 것은 그다음이고요.”

동네 주민인 양 다가가 봤다. 물 한 잔 가져다주는 사람이 없었다. 경기장 내 매점에서 선수들이 컵라면을 먹는 것을 보고서는 기함을 했다. “명색이 국가대표인데 연습현장도 초라하고 먹는 것도 부실했다”고 할 때는 이 전무의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그는 타고나기를 호기심이 많고 이것저것 파고들기를 좋아한다. 대충 알고 넘기는 것을 싫어하는 피곤한 성격이다.

“사서 고생하면 잃는 것보다는 얻는 게 많다”고 믿는 그가 선수들을 더 살펴보고 싶어했다. 그러나 선수들의 마음을 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 전무는 “우선 협회 관계자들에게 연락해 촬영해보겠다고 했다”면서 “나중에 안 사실인데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선수들의 ‘딱한 사정’만 부각시켜 자신들의 잇속만 챙기려 한 일들이 제법 있어 카메라에 대한 거부반응이 상당했다”고 회고했다.

“처음에는 꼭 영화를 만들겠다는 생각이었던 것은 아니었으니 각본도 없었고 그냥 가서 찍었고, 선수들이 눈치 주거나 불편해하면 당장 카메라를 끄고 돌아왔습니다.”


방송사에서 다큐멘터리를 전문적으로 찍어온 김경만 감독을 영입한 것은 이 전무의 ‘신의 한 수’였다. 김 감독은 이번에 처음 영화 메가폰을 잡았다. 뭘 하게 될지, 뭔가를 할지 안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김 감독에게 “일단 경기장에 한번 가봅시다. 감독님도 모르고 저도 모르니 같이 가서 느껴봅시다”라며 손을 잡아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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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아이스하키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는 썰매를 탄타’의 제작책임인 이효승 태흥영화사 전무이사. /송은석기자파라아이스하키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는 썰매를 탄타’의 제작책임인 이효승 태흥영화사 전무이사. /송은석기자


“경기장에서 김 감독과 제가 똑같은 말을 내뱉었어요. ‘이 사람들 진짜 밝다’라고요. 선수단이 몸도 마음도 어렵고 소외된 상황인데도 너무나 밝은 에너지를 뿜어낸다는 사실을 공통적으로 느꼈습니다. ‘한번 가보자’고 의기투합했죠. 다큐멘터리를 전문적으로 해온 김 감독의 대처능력과 친화력이 큰 힘이 됐고요.”

문을 계속 두드리면 열리기 마련이다. 매주, 매일 만나니 익숙한 얼굴이 됐다. 인사가 오갔다. 가끔 웃기도 했다. 결국 친해졌다. 그렇게 찍기 시작해 3년6개월이 걸렸다. 2014년 마무리 작업 후 서울 잠실 올림픽파크 내 아이스하키협회 회의실에서 대형 프로젝션을 통해 선수들과 제작진이 함께 영화를 봤다. 자신의 얼굴이 나오면 선수들이 키득거렸고 분위기는 따뜻했다. 불굴의 투지와 눈물 짜는 감동신화가 넘쳐날 것이라는 생각은 편견이다. 언제가 가장 행복했느냐는 질문에 “다리 다치기 전”이라고 하지 않고 땀 흘려 운동하는 ‘지금’이라고 답하는 선수들은 멈추지 않는 희망과 꿈을 보여주고 있었다. 소규모로 진행된 영화 사전시사회를 통해 벌써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지난달에는 김정숙 대통령 부인과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선수들과 함께 특별시사를 했다. 몇 번이나 눈물을 훔치던 김 여사는 “가슴에 깊이 새기겠다”는 말을 전했다.

이번 영화가 저예산으로 제작됐다고는 하나 큰 수익을 기대할 영화도 아니다. 이 전무가 과거 관여한 영화들을 짚어보자면 필름지(Filmz)라는 영화사를 통해 제작한 ‘자카르타’ ‘색즉시공’ ‘두사부일체’ 등이 있다. ‘해운대’의 윤제균 감독을 ‘입봉’시킨 이가 바로 그였다.

“저는 1988년 태흥영화사에 입사해 올해로 30년째 일하고 있습니다. 2000년도 닷컴 끝물에 영화 스트림 서비스를 위해 관계사 성격으로 회사를 차렸습니다만 대기업이 뛰어들면서 수입이 뚝 떨어졌죠. 만회하기 위해 태흥과는 색깔 안 맞아 겹칠 리 없는 장의 영화를 시도했습니다. 당시 카피라이터로서 부업으로 시나리오를 써온 윤제균 감독과 함께 정준호·하지원·정웅인·송선미 등 당시는 ‘이름없는 배우’들과 손잡았죠. 신인 감독과 덜 유명한 배우로 잘된다면 나도 성취감이 크고 모두가 좋아지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신예감독을 발굴하고 개성파 배우를 등용했다는 것은 과찬입니다. 더 의미 있는 일을 찾아다녔을 뿐이니까요.”

그의 옛날이야기는 자연스레 왜 ‘우리는 썰매를 탄다’를 찍게 됐는지의 대답이 됐다.

한편 태흥영화사는 ‘하류인생’ 이후 ‘천년학’을 제작하려다 여러 가지 외부 문제로 손을 놓게 됐다. 14년 만의 신작은 이례적이며 사회공헌적 성격이 강하다.

“태흥영화사는 ‘아제아제 바라아제’ ‘태백산맥’ ‘서편제’ ‘장군의 아들’ 등 이름만 아는 영화들을 제작한 곳입니다. 객관적으로 상업가치가 낮다고 볼 수밖에 없는 실존영화로 관객에게 감동을 전할 수 있다면 지난 30년간 ‘의미 있는 상업영화’를 만든 것에 버금가는 결과물일 수 있다고 기대합니다.”

뚝심이 있다. 다시금 우리 파라아이스하키팀의 실력을 자랑하기 시작한 그는 ‘빙판 위의 메시’로 불리는 공격수 정승환 선수의 인기부터 “장애·비장애를 통틀어 아이스하키로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은메달을 딴 것은 처음이었다”며 우리 대표팀의 메달 기대감을 설명하는 데 공을 들였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종목에 관심을 갖게 하고 함께 응원하게 하는 것은 정부나 지자체가 나서 정책적으로 밀어붙인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대중에게 알리는 데 가장 좋은 수단이 영화 말고 뭐가 더 있겠습니까. 누구나 알려진 것을 정성 쏟아 더 알리기보다는 전혀 알려지지 않는 것을 알리는 게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영화 개봉으로 패럴림픽 기간에 파라아이스하키와 대표팀이 알려지면 중국 패럴림픽 때는 더 많은 선수 풀이 꾸려질 수 있고 더 큰 응원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요. 꼭 그렇지 않더라도 이토록 밝게 행복을 찾아가는 선수들을 보며 관객들 스스로 자신의 행복을 재발견하고 각자의 파랑새를 찾는 기회가 된다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아무래도 이 전무가 체육인에서 영화인으로 되돌아오려면 패럴림픽이 끝나야 할 것 같다.

사진=송은석기자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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