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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이윤택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선택



연극 연출가 이윤택(67)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들과 여성 단체, 공동 변호인이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와 가해자 처벌을 촉구하고 나섰다.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5일 오전 11시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관에서 ‘미투 운동 이후 피해자가 말한다’라는 주제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공동 변호인단, 연극인 김수희, 홍선주, 이재령, 공대위 활동가 및 여성 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앞서 지난달 14일 극단 미인 김수희 대표는 자신의 SNS에 연극 연출가 이윤택 연출의 성폭력 사실을 폭로했고, 또 다른 피해자들의 추가 폭로가 이어지면서 큰 논란을 빚었다. 이후 이윤택 연출은 지난달 19일 기자회견을 열었으나, 성폭행 사실을 부인하는 등 변명에만 급급한 태도를 보였고, 이에 피해자 16명은 지난달 28일 101명의 공동변호인과 함께 서울 중앙지검에 이윤택을 강간치상, 강제추행 혐의로 고소장을 제출했다.

법무법인 나우리 이명숙 대표는 “101명이 어떻게 모이게 됐느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다. 피해자들과 초기 상담했던 6명의 변호사들이 상의 끝에 공동변호인단을 만들기로 결정했고, 동참 호소 글을 올린지 단 하루만에 101명의 변호사들이 함께하게 됐다”며 “이 시기에 공익의 대변자인 변호사들이 함께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많은 분들이 뜨거운 마음으로 함께 하고 있다. 공소시효 등을 언급하며 처벌이 어렵다는 이야기가 피해자들을 위축시키고 있다. 그들에게 용기를 주고자 한다”고 밝혔다.

피해자 16인을 대표해 이날 현장에 참석한 김수희, 홍선주, 이재령은 큰 용기를 내고 기자들 앞에 나섰지만, 한동안 목이 메여 말을 잇지 못하는 등 묻어뒀던 아픈 기억에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세 사람은 서로의 손을 잡아주고 위로하며 이윤택 처벌 및 문화계에 뿌리 박힌 성폭력에 대한 대안 마련을 촉구했다.

이윤택 연출의 성폭력력을 최초로 고발한 김수희 대표는 “이명행 배우의 성추행 기사로 대학로가 연일 시끄럽던 중에 서지현 검사님의 폭로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김수희 대표는 “극단을 나온 후로 무던히도 잊으려 했던 이윤택이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그냥 묻힌다면 어쩌나 솔직히 불안했다”며 “피해자들과 함께 고소장을 쓰기까지 참 고단한 시간이었다. 추행 수위와 관련된 자극적인 기사들, 피해자를 추적하고 비방하는 sns 글들로 여러 번 상처입고 또 많이 울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많은 분들이 응원을 보내고 힘을 실어주셨다”고 말했다.

이어 김 대표는 “아직도 저희의 행동을 지켜보며 망설이고만 있는 많은 피해자들이 계신 걸 안다. 괜찮다. 당신 잘못이 아니었다. 용기 내달라. 우리의 일상은 너무나 소중하며 나를 사랑해주는 지금 주변 사람들과의 행복이 가장 중요하다. 고통 받으신 많은 분들과 함께 그 분들을 대신해 끝까지 싸우겠다”고 전했다.



특히 이들은 성폭력 폭로 이후 피해자들에게 가해진 2차 피해에 대해서 고통을 호소했다. 이들은 폭로 이후 피해자 및 연희단거리패 출신들에게 실제로 불이익이 가해졌다고 증언했다.


배우 홍선주는 “왜 이제야 말하냐 묻지 마시고, 이제라도 말해줘서 다행이라고 말해 달라. 주목받고 싶었냐고 묻지 말아 달라. 이런 일로 주목받고 싶은 여자는 없다”며 일침을 놓으며 “이 사건을 고백한 후 제 가족들과 극단 신상까지 노출되면서 가슴 아픈 시간들을 견뎌야 했다. 이 사건으로 저를 비롯한 피해자들이 더 이상의 2차 피해로 가슴 아픈 일들이 벌어지지 않도록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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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개인적으로 선생님한테 사랑을 많이 받았으니까 너는 그러면 안된다는 비난을 많이 받았다. 주변에서 이력서를 넣을 때 연희단거리패 작품 이력을 지운다던지, 학원 강사 자리에서도 탈락한 사례도 있었다. 그 시간들을 함께 하지 않았으면 그 사람들의 입장과 마음을 알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무조건 연희단 거리패 출신이기 때문에 불이익을 받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재령 역시 “미투 운동으로 어렵게 말을 꺼낸 후 ‘그동안 왜 말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을 수없이 많이 받았다. 고발하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아무것도 변화되지 않았다. 오히려 캐스팅에 제외되거나 공개적인 모욕을 들었다. 이런 상황들이 되풀이되는 걸 지켜보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체념하고 포기하고 또 다시 고립됐다”며 “지금 저희가 하는 일들이 상처입은 동료와 선후배들에게 혼자만의 아픔과 고통이 아니라는 사실을 전해줄 수 있고 그로 인해 치유와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철저한 진상조사를 요구했다.

또 이재령은 “피해자들이 침묵했던 공통적인 이유에 너무 사랑했던 연극을 지키고 싶었던 마음과 열정적으로 연극에 임했던 기억들을 망치고 싶지 않았던 것도 있다”며 “피해를 당하고도 연극을 지키고 싶었던 마음을 알아달라”고 말했다.

전국성폭력상담소 협의회 배복주 상임대표는 “피해자들은 가까운 주변인으로부터 참아라, 잊으라며 침묵을 강요받고 혼자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어렵게 수사 의뢰를 해도 왜 이제 왔느냐라고 질문을 받으며 2차 피해를 입게 된다. 미투 이후에 가해자들이 피해자들의 무고나 명예훼손 같은 역고소를 통해서 두려움 겪는 등 피해자 생의 전체를 뒤흔드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공대위는 보다 실효성 있는 법안 마련을 촉구하며, 가해자들의 진정성 있는 사과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명숙 대표는 “성폭력 피해자들이 모양은 다르지만 다 같은 생각이라고 여긴다. 가해자들이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죄하기를 빈다”며 “나영이 사건이 있었을 때 법안이 100개 이상 발의됐지만 1년 후에 통과된 건 한 두 개에 불과하다. 공소시효 문제나 2차 피해에 대한 논의 등 이윤택 특별법을 충분한 시간을 가져서 논의하고 제대로 된 대안을 만들어 주시길 빈다”고 말했다.

또 이 대표는 “사건은 수사기관을 통해 자세히 말씀드리려고 한다. 많은 변수들이 있기 때문에 처벌할 수 없다고 비관적으로 언론에 보도하지 말아주시고, 피해자들의 용기를 꺾지 말아주셨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격려와 용기를 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한편 공대위는 “101명의 변호인단 가운데 실질적인 지원을 약속한 분들이 절반 정도다. 이후 피해자에게 가해지는 전화, SNS 등을 통한 협박과 명예훼손에 적극적으로 법적 대응을 할 것이며, 추가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피해자들과 대응 방향에 대해서도 상의할 예정이다”며 “뿐만 아니라 공소시효 폐지 등 각종 법안에 대한 위헌 소송도 진행할 예정이다. 피해자들 보호를 위한 법적 개선과 사회 인식 개선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향후 대응 방향에 대해 설명했다.

/서경스타 이하나기자 sestar@sedaily.com

이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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