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부 동맹국에 대한 철강 관세 면제를 언급한 것은 교착 상태에 빠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 재협상에서 ‘관세 폭탄’을 지렛대로 활용해 협상을 미국에 유리하게 이끌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다른 나라와의 자유무역협정(FTA)에서 ‘관세 폭탄’을 압박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조짐을 보이면서 미국과의 FTA 개정협상이 진행 중인 한국에도 미국이 유사한 연계전략을 구사할지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들을 만나 “만약 미국 노동자와 국민에게 공정한 거래를 성사한다면 (나프타 상대국인) 두 나라에 대한 철강 관세는 협상 포인트가 될 수 있다”면서 “그들이 공정한 나프타를 체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것(관세)을 그냥 남겨둘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실상 노골적으로 철강 관세 부과를 나프타 재협상 타결의 카드로 제시한 것이다.
지난해 8월 시작된 나프타 재협상은 이날 멕시코 수도인 멕시코시티에서 진행된 7차 협상도 큰 진전 없이 종결되는 등 조기 타결 가능성이 멀어지고 있다. 멕시코는 오는 7월 대선이 예정돼 있어 본격적인 선거 국면에 접어들면 미국에 유리하게 재협상을 마치고 이를 11월 미 의회 중간선거에 활용하려던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가 철강·알루미늄으로 커다란 무역 지렛대를 구축했다”면서 “철강 관세를 캐나다·멕시코 등의 양보를 끌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쓰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캐나다는 대미 철강·알루미늄 수출 1위국인 만큼 트럼프의 관세 폭탄 목적 중 하나가 나프타 재협상을 위한 압박용이라는 분석을 뒷받침한다고 WSJ는 전했다.
트럼프가 철강 관세를 무역협상 카드로 쓰려는 의도를 드러내면서 한미 FTA 개정협상에서도 미국 측이 관세를 연계할 것인지에 관심이 집중된다. 다만 아직은 트럼프 정부가 한국에 대해 철강 관세 카드를 연계해 활용할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한미 FTA 개정협상은 나프타와 달리 시간이 많은데다 트럼프 정부가 철강 관세 면제와 연계해 대응할 필요성이 낮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혼란스러운 상황이지만 일단은 관세와 FTA는 별개로 생각하고 있다”면서 “캐나다 철강 회사는 미국 회사 등과 복잡하게 얽혀 있어 캐나다를 면제해줄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지만 이는 우리와 다른 상황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 공화당도 트럼프 정부에 최대 동맹이자 미국인의 고용과 관련이 밀접한 캐나다에 부과한 철강 관세를 면제하라며 정면으로 압력을 가하고 나섰다. 미 권력서열 3위인 공화당의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이날 백악관에 철강 관세 부과를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나프타 재협상 타결을 겨냥해 ‘철강 관세 면제’를 캐나다 등에 채찍보다는 당근으로 이용하고 있는 반면 한미 FTA 개정은 자동차·제약 등 미국 측에 압박 카드가 많아 상황이 크게 다르다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뉴욕=손철특파원 박형윤기자 runiro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