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그리다이언 클럽(Gridiron 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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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14일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르네상스호텔에서는 언론인들이 주최한 만찬 행사가 열렸다. 행사가 막바지로 향할 즈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연단에 올랐다. 밴드는 으레 대통령 찬가인 ‘헤일 투더 치프(Hail to the Chief)’를 연주했다. 이때 오바마 대통령은 갑자기 이를 중단시킨 뒤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히트곡 ‘미국에서 태어났어요(Born in the USA)’를 연주해달라고 부탁했다. 오바마의 출생지가 미국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대통령 자격을 문제 삼는 사람들에게 멋지게 한 방 먹인 것이다. 이를 알아챈 참석자들 사이에서는 폭소가 터져 나왔다.


미국의 중견 언론인모임인 ‘그리다이언클럽(Gridiron Club)’에서 연출된 모습이다. 1885년부터 매년 3월 워싱턴에서 열리는 이 만찬 모임에서는 대통령을 비롯한 유명인사를 초청해 거침없는 풍자와 따끔한 조크를 던진다. 행사에 초대받은 정치인들은 모임의 이름처럼 ‘석쇠(gridiron)’ 위에서 구워지지만 이날만큼은 기자들의 날카로운 비판을 유머러스하게 받아넘긴다. 기자들도 ‘그슬리되 태우지는 않는다(singe but never burn)’는 모토대로 심한 공격은 자제한다. 행사에 초대받는 사람들은 저명인사들이지만 때로 부인들이 나서기도 한다. 2005년에는 조지 W 부시의 부인 로라 부시가 등장해 깜짝쇼를 선보였다. 로라 여사가 “남편은 밤9시만 되면 잠자리에 들고 나는 혼자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을 튼다”며 대통령의 험담을 늘어놓자 청중들은 배꼽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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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언론인들의 ‘석쇠’ 위에서 구워진 정치인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행사 취지에 맞게 백악관의 혼란스러운 모습을 유머를 섞어가며 설명했다. 측근들이 줄줄이 백악관을 떠나는 상황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사람들은 다음 차례에 나갈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 스티븐 밀러 아니면 멜라니아?”라고 농담을 해 웃음을 자아냈다. 연일 정치공방전이 벌어지는 가운데서도 미국에 건강한 의회민주주의가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은 이런 여유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 정치에도 유머가 넘치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오철수 논설실장

오철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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