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한국 경제의 상황이 녹록지는 않다. 이미 지난해부터 시작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시작으로 세탁기 등의 세이프가드 발동, 금리 인상, 한국GM 철수론 등 쉽지 않은 과제들에 직면해 있다.
시간을 거슬러 지난 1882년(고종 19년)에도 조미수호통상조약·임오군란·제물포조약 등 귀에 익은 역사적 사건들이 일어났다. 우리나라가 열강들 사이를 힘겹게 헤쳐나가고 있을 때다.
필자가 새삼스럽게 1882년을 이야기한 것은 우리나라에 현대적 개념의 특허권이 공식적으로 처음 제시된 의미 있는 해이기 때문이다. 그해 9월에 실학자 지석영은 “나라가 발전하고 부강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하나의 원(院)을 설치해 새로운 서적을 구입하고 각국에서 사용하는 새로운 기기를 도입해야 한다”는 상소를 고종에게 올렸다고 실록은 전한다. 여기에는 ‘유능한 젊은이를 선발해 과학기술 교육을 받게 하고 새로운 기계를 만들거나 발명한 사람에게 전매 특허권을 줘 과학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며 특허권을 실행할 구체적인 방안까지 담겨 있다.
지석영은 왜 특허권을 이야기했을까. 영국은 1624년 전매조례를 제정해 1차 산업혁명의 주인공이 됐고 미국은 1790년 최초의 특허법을 제정해 세계 경제를 이끌 수 있었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변화의 시기마다 국가의 혁신적 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한 것이 특허제도이기에 실학자로서 부국강병의 방법으로 특허제도를 이야기한 것이 아닐까.
상소문을 확인한 고종이 ‘조리가 똑똑하고 분명하니 마땅히 그렇게 되도록 조치해야 한다’며 기뻐했다고 실록은 전하지만 아쉽게도 실제 운영했는지에 대한 근거는 명확하지 않다. 반세기가 넘게 흐른 1948년에서야 비로소 상공부 특허국을 통해 우리나라의 특허행정이 본격적인 항해를 시작하게 된다. 이후 ‘유화염료 제조법(이범순·김찬구)’과 ‘천(천일산업주식회사)’이 각각 1호 특허와 1호 상표로 등록된 이래 현재는 특허 183만건, 상표 133만건 이상이 등록됐다.
필자가 특허제도의 역사 한 켠을 이야기하는 것은 1800년대 후반과 지금 현재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서다. 당시에는 열강의 틈 사이에서 자강책을 모색해야 했다면 지금은 4차 산업혁명이라는 변화의 시기에서 혁신성장을 통해 진정한 강국으로 발돋움해야 한다.
19세기 말 겨우 특허제도가 제시됐던 나라가 현재는 특허 분야 세계 4위의 세계가 인정하는 지식재산 강국이 됐다. 지식재산을 통해 혁신성장을 견인할 수 있는 토대는 잘 마련돼 있는 셈이다. 이제 다시 새로운 도약이 필요한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대응해 돈 되고 강한 특허 등 지식재산의 창출과 활용을 촉진하고 보호를 강화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정착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약 130년 전 지석영의 상소가 고종의 의지를 담아 제대로 실현됐다면 어땠을까. 역사적 가정에서 생기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필자는 특허청장으로서 이번에는 우리나라를 진정한 글로벌 지식재산 강국으로 제대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