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비핵화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북미대화 용의를 밝혔지만 이것만으로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기대감을 키워서는 안 된다는 신중론이 우세하다. 북한은 지난 1994년과 2005년에도 미국과의 협상에서 비핵화를 약속했지만 이를 뒤엎은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에 이어 1994년 국제원자력기구(IAEA)까지 탈퇴하면서 불거진 1차 북핵 위기는 제네바합의로 일단락됐다. 미국이 북한의 체제 보장을 약속하고 경수로 2기와 중유를 제공하는 대신 북한은 핵시설을 동결한 뒤 NPT에 복귀, IAEA의 특별사찰을 받는다는 게 합의의 골자였다.
그러나 북한은 이 합의를 어기고 핵 개발을 계속했다. 북한은 원자폭탄의 재료가 되는 플루토늄과 우라늄 등을 농축하지 못하도록 한 제네바합의를 깨고 파키스탄 등에서 우라늄 농축용 원심분리기를 비롯한 각종 설비를 몰래 들여왔다. 2002년 방북한 제임스 켈리 당시 미 국무부 차관보가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 방식의 핵 개발을 시인했다”고 주장하자 북한은 핵 동결 파기와 NPT 탈퇴를 선언했다.
북한은 이후 2005년 9·19공동성명에서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약속한 적도 있다. 남북한은 물론 미국·중국·일본·러시아가 참여하는 6자회담 협상의 결과였다. 6자회담 참가국들은 북한에 에너지 등을 공급하는 대신 북한은 모든 핵무기를 파기하고 NPT 체제에 복귀한다는 게 핵심이었다. 이때도 북한은 미국에 체제 보장을 요구해 한반도 평화협정과 북미 간 신뢰 구축 등이 논의됐다.
하지만 북한은 비핵화 약속을 한 뒤 1년도 되지 않은 2006년 7월 4일 대포동 2호 미사일을 발사했다. 미국의 독립기념일에 협약을 공식 파기한 것이다. 같은 해 10월에는 1차 핵실험까지 감행했다. 2006년 5월 진행된 한미 연합군사훈련에 대한 반발이라는 게 북한의 주장이었다.
비핵화를 약속하고 이를 번복하는 행위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9·19공동성명의 구체적인 이행계획인 2007년 2·13합의, 10·3합의 등이 이어졌지만 2009년에는 장거리미사일 시험발사와 2차 핵실험을 하기에 이른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집권한 뒤인 2012년 2월에도 북한은 미국과 2·29합의를 체결했지만 북한은 두 달 만에 장거리 로켓을 실험발사해 합의를 무력화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