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에 근무하던 간호사가 교수의 성폭력을 견디지 못해 결국 사직했다며 동료 교수들이 진상조사를 요구하고 나섰다.
피해자 본인이 직접 나선 것은 아니지만, 동료 교수들이 피해자를 대신해 ‘미투’ 대열에 동참한 것이다. 그러나 성폭력 당사자로 지목된 교수는 ‘음해’라며 법적 대응방침을 밝혔다.
서울의대 정신건강의학과교실 기획인사위원회 소속 교수 12명은 “동료 A 교수가 그동안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생, 병원 직원들을 상대로 성희롱과 부적절한 성적행위를 하고, 환자에게 마약성 진통제를 과도하게 처방한 의혹이 있다”는 내용의 내부 보고서를 8일 언론에 공개했다. 기획인사위원회는 의대 내 진료과목별로 최고 의사결정을 하는 기구다. 최근 성폭력 피해자 중심의 ‘미투’ 운동이 확산하고 있지만, 대학병원 교수들이 단체로 나서 동료 의사의 성폭력을 주장하고 나선 건 이례적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A 교수는 2013년 10월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워크숍에서 여러명의 간호사들이 있는 가운데 장시간에 걸쳐 성희롱이 담긴 언행으로 문제를 일으켰다. A 교수의 성희롱 대상이 된 한 간호사는 이날 충격 때문에 서울대병원이 위탁 운영하는 보라매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결국 사직했다. 교수들은 “당시 피해 간호사와 목격자들이 병원에 이런 문제를 신고했지만, 아무런 조치 없이 흐지부지 지나갔다”면서 “피해 간호사는 지금이라도 당시 상황을 다시 진술할 의사가 있음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동료 교수들이 주장한 A 교수의 성폭력은 이뿐만이 아니다. 2014년에는 A 교수가 연구원, 간호사, 전공의, 임상강사 등 여러 직종의 여성을 대상으로 부적절한 성적 행동을 지속해서 반복하고 있다는 투서가 대학본부 내 인권센터에 접수돼 조사가 이뤄졌지만, 이 또한 아무런 후속조치가 없었다. 심지어 지난해에는 A 교수가 지도학생과의 모임 중 술에 취해 여학생들에게 성희롱적인 언행을 한 게 문제가 돼 학부모의 요청으로 지도교수에서 배제되는 일도 있었다.
A 교수가 적절히 관리돼야 하는 마약성 진통제를 만성 통증 환자에게 과도하게 처방하고 있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마약성 주사제를 일반 통증 환자에게 무분별하게 처방함으로써 중독 환자를 양산할 위험이 크다는 지적이다.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들은 A 교수의 성폭력과 부적절한 마약류 처방에 대해 재발 방지 차원에서 병원 의사직업윤리위원회가 강도 높게 조사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어 서울의대와 서울대병원의 전 교직원을 대상으로 성폭력 조사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정신건강의학과의 한 교수는 “사회적으로 미투 운동이 한창인데도 병원 내에서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없어 교수들이 단체로 나섰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A 교수는 동료 교수들의 주장이 음해에 불과하다며,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A 교수는 “불미스러운 일로 대학이나 병원 차원의 조사나 조치를 받은 사실이 전혀 없다”면서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면 경찰에 고소하면 될 일인데 뒤에서 이렇게 언급하는 건 오히려 무슨 의도가 있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이번 사안은 심각성이 큰 만큼 의사직업윤리위원회에서 세밀하게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김주환 인턴기자 juju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