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탄력 근로시간제 1년으로 확대 - 반대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

노동시간 단축 흐름 역행 '시기상조'

성수기에 집중적으로 일하고 비수기에 휴가를 쓰는 탄력근로제의 확대방안을 놓고 찬반양론이 맞서고 있다.


국회는 지난달 말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부칙 제3조에 ‘고용노동부 장관은 2022년 말까지 탄력근로제 개선방안을 준비해야 한다’는 조항을 삽입했다. 근로시간 단축에 기업들은 업무량이 집중될 때 초과근무할 수 있는 보완책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 탄력근로제는 취업 규칙에 따라 현재 2주로, 노사가 합의하더라도 최장 3개월 단위로만 운용할 수 있어 경영계는 1년 단위로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 확대 찬성 측은 기업이 성수기 때 더 뽑은 인력이 비수기에 남아돌면 노동생산성이 더욱 하락하는 만큼 제도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반대 측은 1년으로 확대하면 근로자는 연장근로 수당이 줄어들 우려가 있고 집중연장 근로로 인한 피로와 신체 리듬 상실로 인한 산업재해 등 부작용이 크다고 반박하고 있다. 양측의 견해를 싣는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도는 일시적 물량의 급증에 대처하거나 계절적 변동폭이 큰 업종이나 기업에서 근로시간의 제한을 넘어설 수 있도록 허용해주는 제도다. 기업들은 단위 기간 내 기준 시간만 맞추면 초과노동 할증률 없이 노동시간을 탄력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초과노동시간의 대가가 축소되는 것을 감수하는 단점 외에 이점은 없는 사용자 편향적 제도다. 노사의 이해 균형을 취하기 위한 대가가 있었기에 도입이 가능한 제도일 터인데 우리의 경우 주 40시간제 도입과 함께 이뤄졌다. 법정노동시간 단축의 반대급부로 사용자의 비용 증가나 가동시간 제한을 상쇄하는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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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력적 근로시간제도는 서구 국가 특히 독일에서 주 40시간 미만으로 기준 노동시간을 단축할 때 자투리 시간으로 인한 업무 공백을 최소화하고 노동시간 단축의 연착륙을 유도하기 위한 타협책으로 도입됐다. 금속산업 단협으로 기준 시간을 40시간에서 38.5시간, 37시간, 36시간으로 축소할 때 탄력제가 도입되고 확대됐다. 지난 1984년 38시간제 도입 때 2개월 기준 탄력제가 처음 도입됐으며 1987년 37.5와 37시간으로 갈 때에야 6개월 단위 탄력제로 확대됐다. 프랑스에서도 1980년대 39시간제 시행과 함께 탄력제가 처음 도입되고 1998년 35시간 법정노동시간 단축 시행계획과 함께 1년 단위 탄력제가 정착됐다. 주 40시간제 시행 국가에서 도입되는 제도는 아니어서 도입할 때부터 타당성 논란이 있었다. 더 큰 쟁점인 임금감축 문제를 피해가기 위해 기준 시간이 지켜지고 시간 외 노동이 예외인 나라에서나 도입될 제도가 도입된 것이다.

지금은 기준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시점이 아니다. 주 40시간제에는 변동이 없다. 일주일을 5일이라고 보는 비상식적인 행정해석을 바로잡아 주 68시간까지 허용되는 체제를 52시간 체제로 정상화하는 국면이다. 이때 탄력제 확대를 쟁점으로 삼는 것은 논리적인 타당성이 없다. 더구나 52시간을 상회하는 노동자의 비중은 약 40만명 정도로 상대적 소수인데 전체 노동자 1,600만명에게 불이익을 초래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68시간제에서 이미 탄력제가 도입돼 있었다는 게 황당한 일이다. 휴일 특근을 주당 총노동시간 제한에서 제외했고 26개 적용 제외 업종에 종사하는 최소 400만명에게는 무한노동이 가능했으며 5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지금도 근로시간 기준이 전혀 적용되지 않는 나라에서 고차원적 제도인 탄력제가 도입된 것 자체가 한편의 블랙 코미디다. 그런데 비정상을 바로잡고 예외업종을 5개로 축소하고 5인 미만 미적용이 여전한 상태에서 탄력제를 확대하자는 주장은 논리와 상식을 뛰어넘는 일방적인 기업 편들기라는 혐의가 짙다.

그래도 일시적 물량의 급증에 대처하거나 계절 변동이 심한 업종을 고려할 필요성을 거론할 수 있다. 현재 2주 단위 또 노사 합의를 조건으로 3개월 단위로 탄력적 근로시간제도가 도입돼 있어 기업의 애로를 해소할 기초조건은 갖추어져 있다. 이제까지는 초장시간 노동과 변칙이 다각도로 허용돼 이런 복잡한 제도를 굳이 가동할 필요가 없었다. 52시간제로 정상화되고 예외가 축소된 지금에야 현행 수준의 탄력제 활용이 활성화될 수 있다. 시간 외 수당 할증률이라도 절감하려는 기업들은 직원들의 사기 저하를 감수하는 대가도 고려해야 할 것이라서 활용도가 급증하지는 않을 것이다. 52시간도 충분히 긴 시간이고 여전히 예외와 적용제외는 꽤 남아 있다. 장시간노동을 부추기는 제도가 온전히 고쳐지지 않은 상태에서 ‘개 발의 편자’ 격이었던 탄력제는 여전히 몸에 맞지 않는 옷일 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보다 연간 400시간가량 더 일하는 장시간 노동국가이자 무한노동을 허용하는 틈새가 여전한 나라에서 노동시간 단축의 흐름을 거스르는 탄력제 확대는 시기상조다. 탄력제 자체가 연간 노동시간을 늘리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노동자 입장에서는 불규칙한 근무와 시간 외 수당 할증률의 상실을 감수해야 하는 불편한 제도다. 비정상적인 근무시간 관행을 바로잡는 반대급부로 기업의 비용 감축에 도입될 제도가 확대돼야 하는 것은 외국의 사례나 균형 잡힌 상식적 판단으로 보면 성급하고 편향적 발상이다. 주 40시간이 진정 표준이 될 때에야 탄력적 시간제는 의미 있는 제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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