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열여덟 살 때부터 20년간을 두고 어지간히 남의 입에 오르내렸다. 즉 우등 1등 졸업 사건, M과 연애 사건, 그와 사별 후 발광 사건, 다시 K와 연애 사건, 결혼 사건, 외교관 부인으로서의 활약 사건, 황옥(黃鈺) 사건, 구미 만유 사건, 이혼 사건, 이혼 고백서 발표 사건, 고소 사건, 이렇게 별별 것을 다 겪었다.” (나혜석 ‘신생활에 들면서’ 중에서, 218쪽)
누구겠는가? 나혜석(1896~1948)이다. 교과서에는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라고 설명된 바로 그다. 분명 그림 실력 뛰어난 화가였지만 나혜석을 좀 더 탐구해 본 사람이라면 그의 ‘빛나는 글’에 감탄하게 된다. 특히 나혜석의 대표적 단편 소설인 ‘경희’는 최초의 한국 근대 여성문학으로 꼽힌다. 유학중인 여학생이 방학을 맞아 고향에 와 겪는 일을 소재로 한 ‘경희’는 여성 지식인으로서 봉건적 가부장제와 인습에 어떻게 맞서 싸워야 할지를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근대 문학 중 특히 여성문학에 해박한 장영은 성균관대 초빙교수는 “여전히 나혜석을 자유주의자 혹은 시대를 앞서 나간 여성 예술가 정도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장 교수가 가 귀한 나혜석의 글을 모으고 해설을 더해 엮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표지는 근대 신여성에 대한 당시 남성들의 이중적 태도를 풍자한 나혜석의 그림 ‘저것이 무엇인고’가 채웠다.
자기 생애를 스스로, 공개적으로 이야기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혜석은 페미니즘의 선구자로 충분한 자격을 갖췄다. 지금의 미투(me too·나도 당했다는 피해사실 공개) 운동도 자신의 고통스런 경험을 용기 내 말하는 데서 시작되지 않았던가. ‘독신 여성의 정조론’ ‘이상적 부인’ ‘모(母)된 감상기’ 등은 현재로서도 진보적이라 평가될 글이다.
나혜석은 1938년 8월 ‘삼천리’에 기고한 ‘해인사의 풍광’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글을 발표하지 않았다. 그의 조카 나영균 씨의 회고에 따르면 쌓은 높이가 50㎝는 되는 “원고 더미가 다락에 쌓여만 있다가 전쟁통에 모두 없어지고” 말았다. 책을 덮어야 할 즈음 그 사실이 얼마나 원통하고 한스러운지를 알게 될 것이다. 1만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