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과 의학, 얼핏 보면 서로 공통점이 없을 것 같은 분야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수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일본 유명 대학의 의대 교수로 새로운 연구에 나서는 학자가 있다. 주인공은 울산과학기술대(UNIST)의 이효정 박사.
UNIST 수리과학과를 졸업한 이 박사는 16일부터 일본 홋카이도대 의학대학원 조교수로 임명돼 활동을 시작한다. 수학과 의학의 융합 연구로 전염병에 대한 연구를 본격화한다. 지난해 2월 UNIST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이 박사는 홋카이도대 의학대학원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근무한 지 1년 만에 조교수가 됐다. 1918년 설립된 홋카이도대는 영국 글로벌 대학평가기관인 QS가 발표한 ‘2018 QS 세계대학평가’에서 아시아 전체 31위, 일본 내 8위를 차지한 명문 대학이다. 이 박사는 “최근 의학 분야에서 수학적 모델을 융합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며 “UNIST에서 수학에 대한 탄탄한 기본기를 쌓고 융합 연구에 나선 것이 주효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앞으로 감염성 질병에 대한 수학적 모델과 통계적 시뮬레이션을 연구할 계획이다. 전염병의 감염 경로와 확산 추이를 예측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책을 수립하는 것도 연구 대상이다.
이 박사가 이처럼 독특한 분야를 개척하게 된 데는 지도교수인 이창형 UNIST 자연과학부 교수의 영향이 컸다. 이 교수는 2009년 발생한 신종플루의 확산을 지켜보며 감염병 분야 수리 모형 연구를 시작했다. 당시 이 교수의 연구에 합류한 첫 제자가 이 박사였다. 그는 “수학 기반의 응용연구를 하고 싶어 교수님의 연구실에 지원했다”며 “박사 과정 동안 생물수학 분야 연구를 수행하며 신종플루,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뎅기열 등의 감염 질환은 물론 조류인플루엔자·구제역 등의 가축전염병에 대해서도 활발히 연구했다”고 회고했다.
연구 초반에는 질병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애를 먹기도 했지만 수학적 모델에 대한 기초들이 쌓이면서 서서히 연구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 교수는 국내외 학회와 세미나 참석을 독려하며 제자들이 다른 연구진과 활발한 교류를 할 것을 강조했다.
이 박사와 홋카이도대의 인연도 당시 활동에서 비롯됐다. 그는 2016년 일본에서 열린 여름학교를 계기로 홋카이도대 위생학과 연구실에 합류했다. 히로시 니시우라 교수가 지도하는 위생학과 연구실은 수학과 컴퓨터공학·의학·생명공학 등 다양한 전공을 가진 30여명의 연구진으로 구성돼 있다. 이 박사는 “의학자들은 수학적 모델을 필요로 하고 수학자들은 질병에 대한 이해와 객관적 데이터 확보에 목말라한다”며 “질병 데이터 습득부터 분석, 논문 작성까지 신속하게 진행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에서 다양한 융합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고 연구실 분위기를 전했다.
이 박사는 앞으로도 스승인 이 교수와 적극적으로 교류하며 국제 공동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질병의 전파와 영향력이 국제적으로 확대되는 만큼 공동 연구가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수학이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다”며 “UNIST에서의 첫 제자가 해외 명문 대학에 교수로 임용돼 뿌듯하고 수리과학과가 배출한 박사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역량을 발휘하고 있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