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된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의 개헌 자문안에 경제민주화 조항을 강화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경제민주화’라는 이름 아래 정부의 인위적 시장개입을 용인할 경우 기업들의 자율 경영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고 상위법인 헌법에 정부의 시장개입 근거가 될 수 있는 조항을 명문화하면 하위 법령들의 규제수준이 강화될 수밖에 없어 탈규제와 자율경영을 강조하는 시대적 흐름과도 역행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헌법자문특위가 지난 13일 문 대통령에게 보고한 개헌 자문안에는 헌법상 경제민주화의 의미를 명확히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김종철 부위원장은 “경제민주화는 현행 헌법 119조 2항이 모호해 (이를 바탕으로) 입법과 판례에 반영하는 한계가 있다”며 “이를 분명히 하는 두 가지 안을 대통령에게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경제민주화 의미를 명확히 하는 두 가지 안의 구체적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경제 불평등 해소를 위한 국가의 역할과 의무를 강화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현행 헌법 제119조 2항의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는 문구를 일부 수정해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 명분을 키울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 제기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는 문구를 ‘조정해야 한다’로 바꿀 것이라는 관측에 대해 헌법자문특위는 정면 부인했지만 지금보다 정부의 역할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헌법 조항이 수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한다’는 표현이 ‘경제력의 집중과 남용을 방지한다’로 한층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아울러 기업의 사회적 책무에 관한 내용을 추가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자문안은 이르면 오는 21일 발의될 대통령 개헌안에 상당 부분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대통령 개헌안 발의가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당장 재계는 물론 헌법학계에서도 정부 개헌안이 시장경제의 근간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서울경제신문 펠로(자문단)인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시장경제만의 논리구조가 있는데 ‘경제민주화’라는 이름 아래 정치논리의 잣대로 경제질서를 만들려고 하면 결국 경제가 큰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재계 역시 경제민주화 강화로 국가의 시장개입이 확대될 경우 기업 경영의 자율성이 침해받을 것이라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이경상 대한상의 경제조사본부장은 “헌법에 정부의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이 담기면 하위 법령 역시 규제 수준이 대폭 강화되는 방향으로 손질할 수밖에 없다”며 “수시로 급변하는 경제상황과 관련된 조항은 헌법이 아닌 법률에 반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경제민주화를 강화하는 조항이 개헌안에 포함될 경우 상법개정안 등 기업규제 관련 법안들에 대한 논의가 다시 급물살을 탈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국회에는 다중대표소송제와 전자투표제·집중투표제 도입, 감사위원 분리선임 등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상법개정안과 공정거래법개정안 등이 계류돼 있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올해 초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재벌개혁의 제도화는 빼놓을 수 없는 과제”라며 상법개정안 처리에 강한 의지를 나타낸 바 있다.
경제민주화 조항이 강화된 헌법을 필두로 하위 법령을 통해 과도한 규제가 양산될 경우 기업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권력구조를 손보는 것을 넘어 헌법의 경제민주화 조항까지 강화하면 자유시장경제가 무력화될 수 있다”면서 “더욱이 글로벌 금융위기 수습 이후 전 세계 국가들이 기업과 시장의 자율을 강화하고 있는 흐름과도 역행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성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