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정치 성향은 언제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자라면서 읽은 책과 보고 들은 뉴스, 사람들과 나눈 대화 등 수많은 요인이 쌓이고 맞물려 형성되는 것일까, 아니면 강력한 한두 가지 요인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나는 진보인데 왜 보수의 말에 끌리는가?’는 가정환경과 부모의 양육 방식이 자녀의 정치적 세계관을 좌우한다는 매우 흥미로운 관점을 들려준다. 인지언어학자인 조지 레이코프와 엘리자베스 웨흘링은 문답을 주고받는 대담 형식으로 보수와 진보의 프레임이 형성되는 과정을 분석한다.
저자들은 가정의 양육 방식을 크게 ‘엄격한 아버지’ 모형과 ‘자애로운 부모’ 모형으로 구분한다. 부모의 권위를 중시하는 전자는 이 사회에서 성공하고 실패하는 것은 오로지 개인의 책임이며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경쟁에서 승리해야만 세상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이 모형을 따르는 부모들은 주로 사회 복지정책에 대해 “시민을 약하고 의존적으로 만들 뿐”이라고 비판하고 환경보호를 위한 규제에도 부정적 입장을 보인다.
반면 후자의 모델이 강조하는 첫 번째 가치는 타인에 대한 존중과 책임, 공동체의 행복 등이다. ‘자애로운 부모’ 모형은 ‘엄격한 아버지’ 모형과 달리 부모가 동등한 지위를 가지며 신상필벌(信賞必罰)의 원칙을 중시하지도 않는다. 물론 이들은 취약계층을 위한 안전판 역할을 하는 복지정책을 적극적으로 찬성하며 분배 정의를 높이려면 누진세를 강화해야 한다고 외치기도 한다. 저자들은 이 대목에서 다소 도식적인 구분의 위험을 무릅쓰고 ‘엄격한 아버지’ 모형의 가정에서 자란 자녀들은 보수적인 정치 견해를, ‘자애로운 부모’ 모형 아래 성장한 자녀들은 진보적인 가치관을 가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맨 처음 듣는 경험을 하는 곳”과 “우리의 삶을 어떤 식으로든 지배할 수밖에 없는 도덕적 권위자를 맨 처음 접하는 곳”이 바로 가정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곁들인다.
이 전제를 수용한다면 블루칼라가 기업의 편에 서 있는 보수 정당을 지지하거나 부와 명예를 한 손에 거머쥔 기득권자가 진보 정당에 표를 던지는 이유도 설명 가능해진다. 정치 성향은 본인의 사회적·경제적 지위가 아닌 가정환경을 통해 상당 부분 결정되는 것이라면 노동자 계층에 속한 개인이 보수 정당에 투표를 하는 행위를 이해 못할 바가 없다. 저자들은 이를 두고 “사람들은 사익(私益)이 아니라 (성장 과정에서 익힌) 가치에 투표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책을 다 읽고 나면 한국어 제목은 독자의 눈길을 끌기 위한 미끼일 뿐 ‘당신의 뇌에 숨은 정치학(Your Brain’s Politics)’ 정도로 번역할 만한 영어 원제야말로 저자들이 던지는 메시지의 본질에 정확히 부합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책엔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의 성향을 열거할 때 저자들의 편향된 관점이 눈에 띄게 드러나는 것을 우선 문제로 지적할 만하다. 보수와 진보가 그 자체로는 우열이 가려지는 수직적 개념이 아닐진대 이 책은 보수주의자는 사회에 해악만 끼치는 무(無)개념의 시민으로, 진보주의자는 모두가 지향해야 할 이상적 선인으로 시종일관 묘사한다. 현안 A에 대해선 보수적 관점을 가진 개인이 현안 B를 놓고는 진보적 견해를 내비치는 심층적 사례가 존재할 가능성은 애써 외면하는 것도 답답하게 여겨진다. 1만4,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