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건강보험 보장성을 대폭 강화하는 ‘문재인 케어’가 본격 시행됐지만 정책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의 갈등이 날로 커져만 가고 있다. 정부와 의사단체의 갈등이 평행선을 달리는 가운데 의료 현장에서도 반발이 커지고 있어 문재인 정부의 보건의료 정책이 시작부터 삐걱거린다는 분석이다.
대한의사협회 국민건강수호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 소속 의사 1,000명은 18일 서울 광화문에서 집회를 갖고 최근 정부가 상복부 초음파 검사 급여화를 전면 확대하는 행정고시를 예고한데 대해 “의료계와의 사전협의가 전혀 없었다”며 강력 반발했다.
의협은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부터 건보 보장성 강화 방침에 대해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며 각을 세워왔다. 지난해 12월에는 전국 의사 3만여 명이 모여 총궐기대회를 열기도 했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해 환자 부담을 줄여주는 것은 취지는 공감하지만 의료 수가 하락과 의료 서비스 질 저하로 이어져서는 안된다는 게 의협의 입장이다. 의료계의 요구는 “비급여의 급여화에 앞서 적정수가 보전부터 해달라”는 것이다.
정부는 의사들의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지난해 12월 의정실무협의체를 구성하고 의료계의 의견을 적극 수용할 것을 약속했다. 양측은 지금까지 9차례 회의를 여는 등 합의점을 찾아가는 듯 보였지만 최근 상복부 초음파 검사 급여화가 추진되면서 비대위 측이 반대했던 ‘예비 급여(비용 대비 효과가 떨어지는 행위에 대해 본인부담금을 30~90%까지 책정하는 방식)’가 도입되자 분위기가 급랭했다. 비대위 측은 “예비급여를 철회하지 않을 경우 내달 또 한 번의 의사 총궐기대회를 추진할 것”이라며 강경 투쟁을 예고했다.
문재인케어의 구체안이 하나씩 드러나며 의료 현장 곳곳에서도 파열음이 들린다. 특히 최근 정부가 건보 적용 범위를 늘리되 시행 주체를 ‘의료인(의사)’에 한정하는 정책을 속속 내놓음에 따라 의료인-비의료인 간의 불필요한 직역 갈등이 불거지는 모습이다
한국임상심리학회는 지난 17일 공청회를 열어 정부가 오는 5월부터 추진하기로 한 인지행동치료 보장성 강화 정책을 성토했다. 우울증·공황장애 등의 치료에 자주 사용되는 인지행동치료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하되 정신과·신경과 전공의 3년 차 이상 및 전문의가 행한 치료에 대해서만 인정하겠다는 정부 정책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학회의 한 관계자는 “인지행동치료에 건강보험이 적용돼 환자 부담이 줄어드는 일은 환영한다”면서도 “임상심리전문가 등 지난 20년간 국내 정신건강 문제에 헌신해왔던 전문가들을 배제한 채 의사들의 치료행위에 대해서만 비용을 인정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인지행동치료는 심리학자들이 고안한 치료법으로 신경과 전공의 가운데는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도 많다”며 “임상심리사를 배제한 채로는 국민 정신건강을 돌볼 인력이 크게 부족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방사선사들도 상복부 초음파 검사를 급여화하는 대신 검사 주체를 의사에 한정한다고 한 정부 결정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대한방사선협회는 지난 15일 성명서를 내고 “동일한 의료기술행위에 대해 보험료를 특정 집단에만 차별적으로 주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4만여명 방사선사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박탈하는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보건의료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의료법은 의료행위의 주체를 의사 등으로 엄격히 한정하고 있지만 실제 의료 현장에서는 비용이나 인력 부족 등의 문제로 의료기기사나 간호조무사 등 비의료인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다”며 “정부가 성급하게 문제를 풀기보다 현장 목소리를 경청하면서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미기자 kmk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