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경제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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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공화국 시절 대통령 경제수석에 임명된 김재익이 고심 끝에 청와대에 수락조건을 내밀었다. 자신이 추진하는 정책이 엄청난 저항에 부딪힐 텐데 끝까지 밀어줄 수 있느냐는 다짐이었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라며 두말없이 맡겼다는 일화는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대통령의 경제 교사였던 김재익은 이런 두터운 신임을 바탕으로 군부 인사들의 저항을 뚫고 자신의 정책적 소신을 힘 있게 추진해나갈 수 있었다. 그는 시장경제가 존중되는 민간경제로의 전환을 꿈꿨고 저금리·저물가 정책으로 우리 경제의 새로운 성장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 도쿠가와막부 말기 시부사와 에이이치라는 사무라이가 있었다. 그는 원래 부농의 아들이었지만 말단 사무라이로 변신한 후 마지막 쇼군이었던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눈에 띄어 막부의 경제 브레인으로 활약했다. 그는 100원을 주면 1만원을 벌어올 만큼 뛰어난 경제감각으로 도량형을 제정하고 국립은행을 만드는 등 일본의 경제 개혁을 이끌었다. 그는 관직에서 물러난 후에도 ‘인의도덕(仁義道德)’의 경제철학을 설파하며 근대 경제 성장을 이끄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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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성공한 지도자 곁에는 뛰어난 경제 책사가 등장하게 마련이다. 그들은 단순한 지위가 아니라 시대의 흐름을 한발 앞서 읽고 이를 정책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정책가치에 대한 신념이 확고하고 사익이 아니라 공익 실현의 동기가 내재화돼 있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미국 대선에서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라는 구호를 내세웠던 제임스 카빌이나 “민심의 풍향을 읽고 지도자를 움직여 돛을 조정할 줄 알아야 한다”는 딕 모리스의 책사론은 나름 주목할 만하다.

시진핑 집권 2기를 맞아 경제 책사인 류허(劉鶴)가 부총리로 발탁됐다. 시 주석이 미국 고위관료들과 만나 “내게 대단히 중요한 인물”이라고 직접 소개했을 정도로 아끼는 참모라고 한다. 류 부총리는 중국 인민대를 거쳐 미국 하버드대에서 유학했으며 도서관의 장서를 모두 독파했다는 후문도 전해지고 있다.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을 이끌어갈 그가 어떤 중국을 만들어나갈지 주목된다. /정상범 논설위원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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