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등장부터 강렬했다. 인도 여행을 마치고 갓 귀국해 덥수룩한 수염에 헝크러진 머리, 헐렁한 옷차림으로 범상치 않은 ‘포스’가 풍겨 나왔다. 그 와중에 특유의 해맑게 웃고 있는 표정으로 배우 윤박임을 알아챘다.
윤박이 KBS 2TV 드라마 ‘라디오 로맨스’에서 한 차례 큰 변신을 했다. 이번엔 라디오국 전설의 망나니 PD 이강 역이다. 첫 인상 만으로 똘기가 다분한 그에게서 점차 지적이고 유쾌하고 여유로운 이면이 보였다.
등장만으로 시청자들의 이목을 끈 윤박은 캐릭터적인 변신과 더불어 로맨틱 감성을 심도 있게 그렸다. 오랜 후배인 작가 송그림(김소현 분)을 사랑하게 된 후 톱스타 지수호(윤두준 분)와 경쟁구도를 펼치면서 이강 식 ‘직진 사랑’을 실천했다. 겉으론 헤실헤실 웃고 있어도 알고 보면 속이 깊은 남자다.
‘라디오 로맨스’는 까칠한 톱배우 지수호와 그를 DJ로 섭외한 라디오 작가 송그림의 감성 로맨스. 여기에 라디오 PD 이강까지 라디오 부스 안 살 떨리는 생방 풍경과 삼각 러브라인이 그려졌다.
윤박은 22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 한 카페에서 서울경제스타와 만나 “3개월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인데 너무 많은 사랑을 주셔서 감사하다. 많은 응원도 감사하다. 소중한 사람을 만난 시간인 것 같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라디오 로맨스’를 떠나보내는 아쉬움을 전했다.
라디오국 전설의 망나니 PD 이강으로 분하며 천재적인 직감과 뜨거운 열정의 캐릭터로 변신한 윤박은 “나 역시 도전이기도 했다. 잘 해내지 못하면 어떨까 걱정하기도 했는데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신 것 같아서 뿌듯하다. 앞으로 연기하는 데 있어서 자신감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라디오 로맨스’ 중 가장 독특한 세계관을 자랑한 이강은 외형에서도 남다른 스타일링을 자랑했다. “맨 처음 감독님께서는 ‘시청자들이 윤박 씨임을 모르게끔 신선하게 다가가 줬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인도를 다녀왔으면 머리도 되게 지저분해야할 것 같고 수염도 덥수룩할 것 같았다. 실제로 인도에 갔다 온 사람들은 대게 ‘인도스러움’에 빠져있다고 하더라. 그 무렵에 예능 촬영차 태국에 갔다가 그 때부터 딱 3개월간 수염을 길렀다. 이번에 수염을 처음 길러봤는데 인중 부분에 수염이 적당하게 잘 난 것 같다.(웃음)”
이강의 매력을 동적인 것이라 꼽은 윤박은 자유로우면서 자신의 생각과 주장이 강하고 사람들을 많이 사랑하는 부분이 실제 자신과 많이 닮았다고 여겼다. “친구들을 좋아하고 까부는 것도 좋아한다. 내 성격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고 했을 때 처음엔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한정적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인물들과의 관계에 신경을 많이 썼다. 망나니 캐릭터로 소개는 됐지만 라디오 국장님, 아끼는 후배, 라이벌을 대할 때 그 때마다 조금씩 다른 느낌을 보여주려 했다.”
최근 드라마들에서 ‘서브병’ 유발자들이 시청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있다. 전형적인 주연보다 그 다음의 캐릭터가 가진 독특한 매력에 빠지는 병이다. 이강 역시 ‘서브병’ 유발자였다. “나 혼자 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닌 것 같고 주변 인물들과 잘 어울렸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같이 서로 긴장감을 줘야 성립한다고 생각하는데 동료들에게 고맙다. 하모니가 잘 어우러졌던 것 같다.”
이강이 가진 의외의 로맨틱 감성을 느낀 곳곳에서는 윤박을 ‘로코장인’이라 부르기도 했다. “칭찬 받으면 당연히 기분이 좋았다. 이강 역을 처음 시작했을 때 그런 얘길 들을 거라 생각도 하지 못했다. 전작 ‘청춘시대’는 대놓고 멜로여서 그런 말씀을 해주신 게 감사하면서도 나에게 이런 모습이 있구나 생각했던 작품이다. 이번 역에서도 그렇게 봐주셔서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전까지 줄곧 티격태격하던 지수호와 이강이지만, 어느덧 미운정이 든 탓인지 ‘라디오 로맨스’ 마지막회에서는 서로의 미래를 응원하며 ‘쿨한 브로맨스’를 보여주기도 했다. “내가 여자캐릭터로 바뀌었다고 말씀들을 해주시더라.(웃음) 서로 관계가 좋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나오지 않았을 것 같다. 평소에 두준이가 잘 해줘서 서로 믿고 연기했다.”
배우들의 열연은 빛났지만 ‘라디오 로맨스’는 최고 5%대로 시작해 3%대로 아쉬운 성적을 남기고 종영했다. 윤박은 “아무래도 사람인지라 내가 출연하는 작품의 시청률이 좋으면 기분이 좋았겠지만 요즘에는 다른 경로도 많아서 그렇게 저희 드라마를 봐주셨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도 마지막 촬영까지 저희끼리는 장난도 많이 치고 웃으면서 파이팅했다”고 배우들간에 쌓은 우정을 강조했다.
극 중 라디오 PD 역을 맡은 윤박은 실제로도 라디오와 함께하는 삶을 산다고. “소속사가 없이 혼자 촬영장에 다닐 때는 라디오만 듣고 다녔다. 지방촬영장에 갈 때 특히 라디오를 많이 들었다. 자주 들은 프로그램은 ‘컬투쇼’ ‘정오의 희망곡’ ‘조정치 장동민의 2시’였다. 라디오는 정말 매력 있는 것 같다. 이번에 라디오 PD를 연기해보고 기회가 되면 일일 DJ라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새벽 4시라도 좋다.(웃음)”
/서경스타 한해선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