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중립성 원칙은 통신망 사업자가 자사의 통신망을 통해 공급되는 모든 콘텐츠를 모든 사업자에 대해 동등하고 차별 없이 취급해야 한다는 원칙을 말한다. 이 망중립성 원칙에 대해 통신망 사업자와 일반 인터넷사업자 간에 극심한 찬반 대립을 보이고 있는데 논의의 실익은 인터넷망을 과다하게 사용하는 인터넷사업자에게 그가 사용한 망사용료를 차등 청구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망중립성 원칙에 대해 인터넷망의 존재를 전제로 사업을 행하는 인터넷사업자들은 망중립성 원칙을 어떠한 경우에도 훼손할 수 없는 절대적 권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 인터넷사업자에게 통신망 설비를 제공하는 통신망 사업자는 자사 통신망의 원활한 흐름에 심각한 트래픽을 발생시키는 이들 사업자에 대해 적정한 대가를 받기를 원하고 있다.
양자의 의견대립이 극심한 상황에서 중요한 일은 결국 국가의 정책 결정을 통해 인터넷망이 가진 성격을 명확히 규정하는 것이다. 즉 인터넷망을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공자산’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통신사업자가 구축한 ‘사유재산’에 불과한 것으로 볼 것인지를 법률상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망중립성 원칙은 오랫동안 찬반양론 대립을 보여온 이슈다. 이 논의가 가장 활발했던 미국에서도 불과 3년 전인 2015년이 돼서야 망중립성 원칙을 법제화하면서 관련 논의가 일단락된 바 있다. 그런데 그 후 2년도 채 안 지난 지난해 12월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망중립성 원칙을 폐기하는 결정을 내림으로써 세계를 놀라게 했다.
미국이 갑자기 망중립성 원칙을 폐기한 것은 정치적 판단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집권 초기부터 노골적으로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업적을 하나하나 뒤집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망중립성 원칙을 정치적 차원에서 손댄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구글·페이스북·넷플릭스 등 미국의 유력 인터넷사업자들이 강력히 반대했지만 공화당 추천위원이 다수인 FCC 표결에서 망중립성 원칙 폐기안이 통과됐다.
사실 인터넷 트래픽은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왔고 이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므로 이렇게 증가하는 데이터의 트래픽을 감당하려면 이에 걸맞은 네트워크 설비수준의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통신망 사업자들이 현재의 수익체제로는 이를 위한 비용부담이 어려운 상황이며 거대 인터넷사업자들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울러 망중립성 원칙으로 가장 큰 혜택을 본 것은 통신망 사업자가 아니라 단말기기사업자·플랫폼사업자·콘텐츠사업자들이다. 이는 현재 자산가치가 가장 큰 기업들은 통신망 사업자가 아니라 미국의 애플·구글·페이스북 등 같은 대규모사업자라는 점만 봐도 명백하다. 이런 점에서 정보기술(IT)산업 성장의 기반은 네트워크임에도 정작 통신망 사업자들은 불이익을 보는 측면이 있다.
우리나라 이통사들은 초고속·초연결의 5G를 기반으로 한 융합서비스가 성장할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네트워크를 차등 제공할 수 있게 망중립성 원칙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현재 시행되는 ‘망중립성 및 인터넷 트래픽 관리에 관한 가이드라인’에 따라 일반 인터넷에 대해서는 망중립성 원칙이 적용되고 있지만 전송품질을 보장해야 하는 인터넷전화(VoIP) 및 인터넷TV(IPTV) 등에 대해서는 예외를 두고 있다. 사실상 전송품질이 필수적으로 보장돼야 하는 부분에 투자를 장려하기 위한 조치다. 이러한 경향은 전송품질 보장이 중요한 5G 시대에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망중립성 원칙은 주로 경제적 측면에 초점이 맞춰져 논의가 진행돼왔다. 망중립성 원칙의 적용에 대해 법조계·언론계·시민단체 등 사회 전 분야에서 함께 머리를 맞대고 행하는 논의를 통해 그 원칙적용으로 발생할 사회적·정치적·문화적 측면들을 모두 고려해 최대한 모두의 이익이 지켜지는 가장 합리적인 정책으로 만들어지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