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대의 스마트폰을 미국으로 수출할 때 대략 몇 번의 정보교환이 이뤄질까. 100명의 관련자가 평균 200회의 문서를 주고받는다고 한다. 해외 온라인 쇼핑몰에서 누구나 손쉽게 물건을 살 수 있는 시대가 왔지만 이처럼 여전히 수출과 수입은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관세청이 지난 1994년 전자데이터교환(Electronic Data Interchange·EDI) 기반 통관시스템을 개통한 이래 대부분의 무역 절차는 인터넷으로 편리하게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역 정보가 수출자와 세관을 거쳐 수입자까지 단계적으로 흐르는 과정에서 데이터 오류가 종종 발생한다. 이를 악용한 범죄는 더 문제다. 2014년 허위수출을 통해 3조원대의 무역금융사기를 벌인 모뉴엘 사건이 대표적이다. 그렇다고 오류나 무역 사기를 막기 위해 인증을 강화하면 비용 부담과 물류 흐름 지체로 이어진다. 무역시스템에서 안전과 속도는 상충관계에 있다.
연간 4억3,000만건에 달하는 수출입 신고의 진위 여부를 세관에서 일일이 확인하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정보 조작을 막으면서 효율적으로 교환할 방법은 없을까. 블록체인 기술이 답이 될 수 있다.
관세청은 앞으로 블록체인 기술을 수출통관 물류서비스와 자유무역협정(FTA) 원산지증명서 교환시스템에 도입할 계획이다. 수출신고에 필요한 첨부서류들이 블록체인을 통해 즉각 모든 관여자에게 공유되고 물류의 흐름과 무역금융이 효율적이고 투명해진다. 제2의 모뉴엘은 나오기 어려워진다. 지금의 전자통관시스템이 연간 35억달러의 물류비용을 절감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비용절감 효과는 매우 클 것이다.
블록체인의 경제적 효과는 물류비용에만 그치지 않는다. 블록체인 시장은 그 규모가 오는 2025년 8조달러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아직 세계 시장을 선점한 솔루션이나 국제 표준은 없다. 몇 개의 시범사업들만 언론에 대표사례로 인용된다. 우리나라 전자통관시스템은 이미 11개국에 수출(3억5,000만달러 규모)됐다. 블록체인 기반 통관시스템도 세계로 못 나갈 이유가 없다.
물론 블록체인을 장밋빛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 왜 필요한지와 도입 환경을 꼼꼼하게 따져야 한다. 조직이 블록체인을 도입할 수 있는 축적된 정보화 경험이 있는지도 문제다. 기술적인 가능성과 관련법을 검토하는 것은 기본이다. 관세청은 지난해 38개 기관과 블록체인 컨소시엄을 구성해 기술적 검토를 마쳤다. 올해부터는 규제를 개선하고 외국 세관과 협력해 블록체인 기반을 만들어나갈 계획이다.
우리나라는 수출로 경제를 키웠고 정보통신기술(ICT)로 세계를 앞서나간 경험이 있다. 4차 산업혁명은 우리에게 새로운 도약의 기회다. 프랑스 역사학자 쥘 미슐레는 “현실에 국한된 사고는 진짜 현실을 볼 수 없게 한다”고 했다. 블록체인은 이제 발걸음을 시작한 진짜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