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건강 에세이] '뇌전증 의료사회사업' 시급하다

홍승봉 대한뇌전증학회 회장·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




뇌전증은 뇌졸중·뇌종양·뇌혈관 기형·해마경화증으로 아주 작은 부위의 뇌 신경이 손상을 받아도 발생할 수 있는 흔한 뇌 질환이다. 따라서 우리들의 자녀·부모나 할아버지·할머니도 앓을 수 있다. 또 환자의 70%가량은 고혈압·당뇨병과 마찬가지로 약으로 치료할 수 있어 학교·직장생활이나 결혼·출산 등에 전혀 문제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뇌전증에 대한 편견과 오해는 아직도 널리 퍼져 있다. 오랫동안 잘 사귀던 남녀도 뇌전증을 앓고 있다는 고백에 헤어지는가 하면 취업 인터뷰 때 뇌전증으로 병역면제를 받았다고 하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543명의 뇌전증 환자들을 조사한 연구를 보면 뇌전증을 앓고 있다고 밝히고 취업 거절을 당한 경우가 58%인데 반해 그러지 않은 경우는 12%였다. 해고 역시 각각 40%와 16%로 뇌전증 사실을 밝힌 경우 훨씬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 1년 이상 증상이 없는 뇌전증 환자 225명을 조사해보니 76%가 차별이나 부당한 대우를 받을까 두려워 뇌전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


뇌전증에 대해 올바른 지식을 가진 사람이 독일·프랑스에서는 10명 중 8명 이상이지만 우리나라는 3명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교사들의 50% 이상이 “뇌전증은 유전·전염된다” “뇌전증 환자는 지능이 떨어진다” “위험하므로 정규반에 둬서는 안 된다”는 식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 어떤 질환이 이렇게 심한 편견과 오해에 시달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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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전증은 유전병이나 전염병이 아니며 정신질환은 더더욱 아니다. 지능이 낮지 않으며 위험하지도 않다. 그런데도 가정·학교·직장·사회생활 모든 부문에서 어려움과 제약을 받고 있는 것이 뇌전증 환자들의 현실이다. 뇌전증 환자의 38%, 배우자나 부모의 30%는 우울증을 앓고 있다. 뇌전증 환자들은 미래의 삶에 대한 걱정, 스트레스 관리·대인관계·직장생활·약물복용·의료서비스 이용의 어려움, 경제적 곤란, 발작의 두려움, 가족갈등 등을 호소한다. 뇌전증 어린이·청소년의 어머니 중 상당수는 질병으로 인한 불안·공포·불확실성으로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로 인해 양육 부담과 스트레스로 삶의 질도 크게 떨어져 있다.

뇌전증 환자와 가족들의 심리적·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해 치료가 잘 유지되도록 지원하고 치료 중 원만한 사회적응을 돕는 의료사회사업이 꼭 필요한 이유다. 현재 정신질환자나 재활환자들을 위한 의료사회사업은 있지만 뇌전증 환자를 위한 의료사회사업은 없다. 뇌전증 분야에도 이 사업이 도입되면 뇌전증 증상·의료비·스트레스·약물요법·재활·직업·대인관계와 가족·부부 문제를 상담하고 환자들의 모임 참여 등을 도울 수 있다. 환자들에게는 뇌전증을 이해하고 적응·대처·관리하는 방법, 대인관계 개선방법을 상담·교육함으로써 자존감을 높이고 불안·우울감을 낮추고 사회적 기능을 향상시켜줄 수 있다. 뇌전증 환자의 부모에게는 양육 부담을 덜어주고 스트레스 완화법, 질병 대처 방법 등을 상담·교육하고 자조집단 등 지지 체계를 개발·연계해줄 수 있다.

외국 연구결과에 따르면 뇌전증 환자와 가족에 대한 심리 사회적 치료는 자살 생각·우울감 감소, 자가관리 기술의 향상, 치료 협조성 증가를 가져온다. 이제 뇌전증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개선하는 데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한다. 뇌전증 의료사회사업의 시행이 그 첫걸음이다. 전국 각 분야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는 뇌전증 환자와 가족들의 치료에 큰 도움을 주고 뇌전증에 대한 편견 개선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뇌전증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없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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