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의 중심은 데이터다. 데이터는 새로운 자본재로서 승자독식의 구도를 야기한다. 데이터가 성공의 핵심역량인 서비스 분야는 구글·아마존 등 ‘데이터 공룡’에 의해 시장 쏠림이 발생한 지 오래다. 서비스가 데이터를 만들고 데이터가 서비스를 강화하는 순환의 고리가 연결되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흐름에서 제조 영역 또한 서비스와 융합된 PSS(Product Service System) 형태로 전환되고 있어 승자독식 구조 강화가 우려된다. 이러한 위기상황에서 생존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통합적 전략 수립과 조속한 실행이 절실하다. 데이터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실체적 방안을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두 가지 산업군에서 제시해보고자 한다.
첫 번째는 국내 제조업 생산의 13%를 차지하는 자동차산업이다. 자동차산업은 ‘제조와 서비스의 융합’이라는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패러다임 변화를 가장 급격하게 겪을 분야이기도 하다. 위기가 크게 느껴지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기회로 전환할 가능성이 보인다. 바로 데이터다. 장착률이 80%에 달하는 차량용 블랙박스, 대형 차량에 의무 장착될 첨단운전자지원시스템(ADAS), 세계 최고 수준의 보급률을 가진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으로부터 양질의 데이터가 생산되고 있다. 이러한 데이터를 융합·분석한다면 자율주행에서 가장 중요한 안전운전기술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데이터들을 개인과 기업이 각각 보유하고 있어 통합적으로 분석될 수 있는 기반이 갖춰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개인·기업·정부 간 협력으로 교통정보 통합플랫폼을 구축하고 관련 데이터들을 융합·분석할 수 있는 환경을 서둘러 조성해야 한다. 정부도 자율주행 선도국가 조성을 전략과제로 지정하고 실증단지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상용화될 5세대(5G) 통신을 기반으로 자동차와 교통 관련 실시간 데이터를 해당 플랫폼에 수집하고 분석결과를 네트워크에 연결된 내비게이션을 통해 안전운전 보조자료로 적용한다면 특정 지역에 한정된 실증이 아닌 대한민국 전체를 ‘안전운전 실증 도시화’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또 다른 분야는 의료다. 의료 데이터 활용은 국민에게는 통합적 건강관리, 의료계에는 정밀 맞춤 진료, 산업계에는 신기술 및 신약개발 가속화, 정부에는 효율적 의료보험 재정관리를 가능하게 하는 무한한 파급력을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는 1인당 외래진료횟수·입원횟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대비 두 배 이상으로 다른 나라에 비해 의료 접근성이 월등히 높다. 실시된 지 30년이 되는 전 국민 대상 공적 의료보험의 영향이다. 일찍이 진행된 의료기관의 정보기술(IT)화 역시 양질의 의료 데이터를 생산하는 데 한몫했다.
문제는 규제다. 의료 데이터는 융합에 의한 가치가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가장 민감한 개인정보로 분류돼 활용을 위한 접근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이 부분을 개인의 동의를 통해 돌파하기를 제안한다. 개인의 금융 관련 정보가 금융포털을 통해 통합조회가 가능하듯 모든 의약기관이 연계된 의료정보포털을 구축해 개인의 모든 의료 관련 정보를 조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포털을 통해 본인이 동의하면 개인의 모든 의료정보가 비식별화·융합돼 다양한 주체가 이를 분석·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같은 방안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정보활용에 동의한 개인에게 제공될 혜택이 매력적으로 설계될 필요가 있다. 많은 스타트업과 우수 기업들이 데이터를 활용한 서비스 개발을 전개하고 그 결과가 데이터를 제공한 개인에게 혜택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한다면 충분한 동인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조기에 선순환 체계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고령화로 인해 커다란 부담으로 다가오는 건강보험 예산 절감 기대분의 일부를 마중물로 해 우수한 인력들이 해당 분야 연구에 모일 수 있는 기반을 선제적으로 마련하는 접근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빠른 시간 내 주력 산업에서 데이터 융합의 실체를 만드는 것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승자독식 흐름을 기회로 만드는 대한민국의 생존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