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 사람들은 익명의 암호학자 사토시 나카모토가 2008년 처음 소개한 비트코인을 세계 최초의 암호화폐라고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처럼 비트코인의 탄생 뒤에는 기술적·사상적 기반을 제공한 앞선 전자화폐들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1993년 UC버클리 대학 출신 암호학자인 데이비드 차움 박사가 만든 이캐시(ecash)는 비트코인 등 현재 거래되는 암호화폐들의 직접적인 조상으로 꼽힌다. 세계 최초로 암호학을 적용해 만들어 낸 전자화폐이기 때문이다.
3일부터 이틀간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진행되는 분산경제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암호학의 아버지’이자 비트코인의 모태를 만들어낸 차움 박사가 한국을 찾았다. 그는 첫날 ‘분산컴퓨테이션’이라는 주제로 발표하며 디지캐시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암호화된 전자화폐를 처음으로 만들어냈던 이야기를 상세히 풀어냈다.
그는 “공개적으로 이런 이야기를 잘 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과학자로서 왜 이걸 했을까. 동시에 다른 연구도 했지만 왜 (디지캐시를) 만들었을까”라고 질문을 던진 뒤 “사회가 암호를 사용해 자신의 프라이버시라는 개념을 이해하고 또 받아들이고 사용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다만 세상에 알려진 것처럼 그의 업적이 1980년대 후반부터 태동한 사이버펑크 운동(중앙집권화된 국가와 기업에 저항하고 개인들을 위해 기술을 이용하자는 정신)에 바탕을 둔 것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패널 토론에서 “사이버펑크 운동과 일맥상통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차원의 개인의 권익 증진, 개인의 자유화 측면에서 생각한 것 같다”며 “(사이버 펑크 운동보다) 더 나은 비전, 소명이 암호화폐 기술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UC버클리대에서 암호학 연구에 뛰어든 뒤 1981년 세계암호학회(IACR) 창립하고 1982년 발표한 논문에서 ‘은닉 서명(Blind signature)’이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암호학과 금융거래를 접목해 프라이버시 문제를 해결해보려는 시도를 시작한 것이다. 은닉 서명은 금융거래를 할 때 송금인의 신원을 숨기되 수신인의 신원은 드러나는 보안기술로 익명성을 비대칭적으로 보호하는 모델이다.
이후 차움 박사는 1990년 디지캐시라는 회사를 세우고 암호로 금융거래자들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할 수 있는 이캐시를 개발했다. 당시는 전자상거래가 지금처럼 활발하지 않았던 시기였지만 도이체방크, 크레디트스위스 등 세계적 은행들과 손잡고 오프라인에서 암호화된 전자화폐로 결제시스템을 만드는 실험을 하기도 했다.
그는 “1994년 컨퍼런스에서 이캐시를 스위스 제네바에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세계 최초로 전송했다”며 “카페테리아에 있는 발코니에 앉아서 보도자료를 냈는데, 이 자료를 내자마자 모든 언론에서 이를 보도하기 시작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아쉽게도 전자상거래 기반이 없고 일반인들 사이에서 프라이버시에 대한 인식이 확고하지 않은 시대에 했던 그의 실험은 빛을 보지 못했다. 1998년 디지캐시는 경영난을 이기지 못해 파산했다. 그렇지만 차움 박사의 연구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만나 다시 꽃을 피웠다. 중앙은행이 통제하는 화폐 시스템에 대한 반감과 프라이버시에 대한 관심이 무르익으면서 암호 기반의 탈중앙화된 비트코인이 탄생하는 데 기반을 제공한 것이다. 한때 그가 아직 정체가 알려지지 않은 비트코인의 창조자 사토시 나카모토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던 이유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블록체인 생태계가 본격적으로 싹트고 있는 지금 암호학의 아버지인 차움 박사는 어떤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을까? 바로 암호학으로 ‘거버넌스(국가경영)’를 바꾸는 일이다. 곧 중대한 발표를 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운을 띄운 그는 “극단적으로 새로운 것일 수 있지만, 고대 그리스로 돌아가서 직접 민주주의가 가능하도록 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