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화학무기

송영규 논설위원

1115A39 만파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5년 4월22일 땅거미가 질 무렵 벨기에의 서부 도시 이프레. 독일군과 대치하던 프랑스군 참호로 수상한 녹색 연기가 스멀스멀 몰려 왔다. 불과 10여분 만에 참호 안에 있던 프랑스군 6,000여명이 심한 기침과 함께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나중에 밝혀진 연기의 정체는 치명적인 염소가스였다. 가공할 대량살상무기에 경악한 연합군은 즉각 화학무기 개발에 나섰고 그 결과 1차 세계대전 기간에 약 9만명이 사망하고 120만명이 부상당하는 흑역사가 만들어졌다.


화학무기가 무서운 이유는 살상력이 크다는 데 있다. VX 같은 신경가스는 불과 한두 방울로 성인 남성의 목숨을 짧게는 수분 안에 앗아갈 정도로 치명적이다. 일본의 사이비 광신교인 옴 진리교가 도쿄 지하철에 뿌린 사린가스는 공중에 4~5㎏을 살포하면 수분 안에 수십만 명을 죽일 정도의 위력을 가졌다. 1980년부터 8년간 이라크가 이란에서 신경작용제와 겨자가스 등을 살포해 수천 명을 살해하고 약 100만명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었던 것도 화학무기의 위험을 경고하는 단적인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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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모든 화학무기가 처음부터 살상을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신경작용제의 시초로 알려진 타분(Tabun)은 1936년 독일의 제약회사에서 살충제를 개발하던 중 우연히 발견한 독가스이며 지난해 김정남 독살에 사용된 신경가스 VX 역시 1950년대 영국 화학자 라나지트 고시가 합성해 만든 ‘아미톤’이라는 살충제를 영국의 포트다운 화학전연구소가 개량한 것이다. 식량 증산이라는 선한 의도에서 출발했지만 결국은 인류를 위협하는 치명적 무기로 변질된 셈이다.

시리아 정부군이 반군 장악 지역인 동구타에 또 화학무기로 의심되는 폭탄을 투하해 최소 60명이 죽고 1,000여명이 다쳤다. 뿌연 연기 사이로 아이들을 구하려고 구호단체 직원들이 급히 물을 뿌리고 시체가 나뒹구는 현장은 “최후의 심판일 같았다”는 현지 매체 기자의 증언보다 더 참혹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리아 정부를 맹비난하며 “48시간 내 중대 결정”을 선언했지만 이것이 시리아 국민들에게 또 다른 지옥이 되지 않을까 두렵기만 하다./송영규 논설위원

송영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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