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STX 노사 힘겨루기에 시간만…"노조 결단 못하면 공멸"

인건비 감축은 합의했지만 무급휴직 기간 놓고 엇박자

업계 "채권단 수용도 미지수인데…답답하다" 지적도

“노조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채권단에 노사확약서를 내기로 한 시점을 지나서도 STX조선해양 노사가 갈등을 빚고 있다는 소식에 중견 조선업계 고위관계자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채권단은 대대적인 인건비 감축 방안을 가져오지 않으면 법정관리도 불사하겠다며 으르고 있다. 채권단 실사 결과 청산가치가 더 높다고 나온 터라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사실상 회사가 공중분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는 “모두가 공멸하는 길로 한발 더 다가서는 모양새”라며 씁쓸해했다.




1115A13 STX조선구조조정일지



채권단은 당초 STX조선 노사가 인건비를 대폭 감축하는 방안을 지난 9일까지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STX조선 노사는 생산직 인력 75%(500여명)의 인건비 감축에 합의한다는 내용의 확약서를 제출해야 했다. 하지만 노조가 “인력 감축 절대 불가”를 고수하고 있어 합의에 난항을 겪고 있는 상태다. 회사는 생산직군을 대상으로 8일까지 희망퇴직 및 아웃소싱(협력업체로 이동) 신청을 받았으나 총 144명만이 신청해 목표치의 30%도 달성하지 못했다.

제출 마감시한을 앞두고 다급해진 사측은 9일 노조에 다른 조건을 내걸었다. 무급휴직·임금삭감·상여금 삭감을 통해 정부와 채권단이 요구한 생산직 인건비 75% 절감 효과를 내는 방안이다. 노조가 자정께 돼서야 큰 틀에서 이를 수용하기로 하면서 위기를 모면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세부 조율과정에서 엇박자가 나면서 협상은 다시 미궁 속으로 빠지고 있다. 무급휴직 기간을 둘러싸고 의견 대립이 발생한 것이다. 채권단에 따르면 사측은 5년 동안 매년 6개월씩 전 생산직군이 무급휴직을 해야 인력 75% 감축 수준의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노조는 5년이라는 기한이 너무 길다며 이를 합의서에 못 박는 데 난색을 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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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가 힘 겨루기를 하는 동안에도 시간은 가고 있다. 채권단은 10일 제출 기한까지 노사협약서가 도착하지 않은 만큼 원칙적으로 법정관리 돌입하겠다고 공언해둔 상태다. 다만 STX조선 노사가 무급휴직을 통한 비용 절감이라는 큰 틀의 합의를 이룬 만큼 세부 협상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업계에선 STX조선이 살아남기 위해선 채권단이 법정관리 신청을 준비하기 위한 10여일 안에 합의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보고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5년 전체 무급휴직에 합의하더라도 채권단에서 받아줄지 미지수인데 기한을 놓고 논의가 길어지고 있어 답답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선 STX조선이 장기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대대적인 인건비 절감에 나서야 한다고 보고 있다. 중형 선박 시장이 중국 등 경쟁 국가가 끼어들면서 점차 레드오션으로 변해가고 있어서다. 국내 조선사는 다소나마 건조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지만 선가를 최대 10%까지 낮춰 입찰하는 중국 탓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이 때문에 STX조선은 지난해 7월 법정관리를 조기 졸업한 뒤에도 매출은 전년보다 63% 감소한 3,958억원에 그쳤고 영업이익은 -1,173억원으로 3년 연속 적자를 보고 있다.

하지만 본사 생산 능력을 대폭 낮춰 생산직군을 줄이면 원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게 돼 장기 생존 가능성도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생산직군이 75% 가까이 감소하지만 외부 하청업체를 통해 이를 메울 예정이기 때문이다. 하도급 업체를 통하면 본사에서 지을 때보다 60% 정도 인건비를 아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선박 가격에서 인건비가 30% 정도를 차지하는 만큼 이를 통해 전체 선박 건조 비용에서 10% 정도를 아낄 수 있었고 중국과 가격 격차도 좁힐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역 경제와 조선 산업 생태계 타격까지 고려하면 노사 합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STX조선과 연계된 협력·거래업체들이 대금 미결제 등으로 줄도산하는 등 경영위기가 가중되고 지역 경제에도 엄청난 고통을 가져올 수 있다는 얘기다. 이미 경남을 비롯한 전국 1,300여개 조선해양기자재 업체들은 납품업체는 물론 2·3차 협력업체들의 심각한 경영난을 호소하고 있다. 조선 업계 전문가는 “이미 상당수 중소형 조선소가 도산 또는 폐업한 상황에서 성동조선에 이어 STX조선까지 법정관리를 신청하면 우리 조선업의 산업 생태계가 붕괴돼 조선기자재 산업 위축 및 조선업 글로벌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우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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