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STX노사 비용절감 확약서 제출...채권단 결정만 남았다

■법정관리 기로에 선 STX조선

노사 무급휴직 등 합의했지만

선박 건조 효율성 하락 우려에

채권단 합의안 수용여부 미지수

"구조조정 원치깼다" 논란도 변수

산업은행이 STX조선해양에 대한 회생절차를 신청한다고 밝힌 10일 오전 경남 창원시 진해구 STX조선 정문으로 직원이 출근을 하고 있다./연합뉴스산업은행이 STX조선해양에 대한 회생절차를 신청한다고 밝힌 10일 오전 경남 창원시 진해구 STX조선 정문으로 직원이 출근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이제 공은 산업은행으로 넘어갔습니다.”

STX조선해양이 채권단에 인건비 절감 방안을 제출한 10일 중견 조선업계 고위관계자는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다며 초조해했다. 제출 기한을 하루 넘기면서까지 극적으로 비용 절감 방안에 합의했지만 이를 채권단이 수용할지는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채권단은 기준치에 미달한다고 판단하면 법정관리도 불사하겠다며 강경한 입장이다.

채권단이 가장 선호한 방안은 전체 인력의 75% 감축이었다. 국내 중형 조선사가 다소나마 건조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지만 선가를 최대 10%까지 낮춰 입찰하는 중국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대대적인 인건비 절감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에서다. 이를 위해선 500여명의 생산직 근로자가 희망퇴직하거나 아웃소싱(협력업체로 이동)을 신청해야 했다. 하지만 노조가 “인력 감축 절대 불가”를 고수하면서 이는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STX조선은 생산직군을 대상으로 8일까지 신청자를 받았으나 144명만이 신청해 목표치의 30%도 달성하지 못했다.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한 사측은 다급하게 노조와 협상해 인력 감축 없는 인건비 절감 방안을 제시했다. 무급휴직·임금삭감·상여금 삭감을 통해 정부와 채권단이 요구한 생산직 인건비 75% 절감 효과를 내는 방안이었다. 노조가 이를 수용하기로 하면서 큰 틀에서 합의하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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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채권단이 선뜻 받아들일지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채권단을 머뭇거리게 하는 것은 확약서의 디테일이다. 사측은 고용을 유지하는 대신 노조에 5년 동안 매년 6개월씩 전 직원이 무급휴직하는 안을 자구안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노조 측은 5년이라는 기간이 지나치게 길다며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사확약서에 기한이 명시됐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무급휴직 기한이 충분하지 않으면 채권단 입장에선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이날 “현재는 채권단이 수용할 정도의 합의는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 듣고 있다”며 다소 부정적인 뜻을 내비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무엇보다 채권단은 무급휴직으로 건조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6개월간 일손을 놓고 있다가 다시 작업에 투입되기를 반복하면 일정 수준의 효율성을 낼 수 없다는 것. 산은 관계자는 “선박을 건조하는데 2~3년이 소요되는데 생산 근로자가 6개월씩 교체되면 효율성이 떨어지는 건 당연한 것 아니냐”면서 “계산상으로는 75% 인력 감축 효과를 낼지 몰라도 생산성 하락을 감안하면 당초 목표를 맞출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급 휴직으로 인한 효율성 저하 문제는 사측도 우려했던 부분이다. 장윤근 STX조선 대표는 인력 감축에 반발하는 노조가 무급휴직 등을 요구하자 “이 같은 방안으로는 회사 운영이 불가능하다”고 호소한 바 있다.

정부와 산은이 STX조선 노조에 끌려다니면서 구조조정 원칙을 스스로 깼다는 비판이 나오는 점도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산은은 노사확약서 제출 시한을 당초 9일 오후5시로 못 박았다가 이날 자정으로 연장했다. 10일 새벽 노사가 자구안의 큰 틀에 합의하고 오후에 확약서를 제출한 것을 받아준 것이다. 이날 새벽 산은은 “STX조선이 기한 내에 자구안을 제출하지 않아 원칙적으로 회생절차 전환을 신청할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몇 시간 후엔 “노사확약서가 제출되면 산업경쟁력강화관계장관회의에서 검토해 처리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산은을 비롯한 채권단이 자구안에 낙제점을 주면 결국 STX조선은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된다. 이미 지난 채권단 실사 결과 청산가치가 존속가치보다 높다고 나온 터라 청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때 세계 4위의 조선소였던 STX조선마저 법정관리에 다시 들어가면 ‘중형 조선 산업 생태계 붕괴’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 중형 탱커 등의 선박을 수주할 조선소가 사라지고 중국 등 해외 업체들이 이득을 본다는 것이다. 법정관리로 갈 경우 기존 STX조선에 발주했던 선사들이 계약을 파기하고 중국 업체에 발주할 가능성이 높다. 대외 신용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추가 수주도 어려워진다. 협력·거래업체들이 대금 미결제 등으로 줄도산하는 등 경영위기가 가중되고 지역경제에도 엄청난 고통을 가져올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이미 전국 1,300여개 조선해양기자재 납품업체와 2·3차 협력업체들은 심각한 경영난을 호소하고 있다. 한 조선 업계 전문가는 “이미 상당수 중소형 조선소가 도산 또는 폐업한 상황에서 성동조선에 이어 STX조선까지 법정관리를 신청하면 우리 조선업의 산업 생태계가 붕괴돼 조선기자재 산업 위축 및 조선업 글로벌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우보·노희영기자 ubo@sedaily.com

김우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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