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구한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도시 로마에 또 다른 역사가 쓰였다. AS로마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 1대4 대패를 극복하고 4강에 진출했다. 챔스에서 1차전 3골 차 이상의 열세를 뒤집은 것은 로마가 역대 세 번째. 2003-2004시즌 8강에서 데포르티보가 AC밀란을 상대로, 지난 시즌 16강에서 바르셀로나가 파리 생제르맹을 상대로 대역전을 이뤘다.
로마가 드러눕힌 상대는 챔스 5회 우승을 자랑하는 거함 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엔 ‘로마의 악몽’이었다. 정규리그 38경기 연속 무패를 기록 중인 바르셀로나는 코파델레이(스페인 FA컵) 결승에도 올라 있었다. 그러나 리오넬 메시의 트레블(챔스·정규리그·FA컵 우승) 희망은 챔스 4강 문턱에서 이렇게 산산이 부서졌다. 바르셀로나는 이날 전까지 올 시즌 챔스에서 10경기 3실점을 했는데 이날 하루에만 3골을 허용했다.
지난 5일(이하 한국시간) 바르셀로나 캄프누에서 1대4로 졌던 로마는 11일 이탈리아 로마의 스타디오 올림피코에서 열린 챔스 8강 홈 2차전에서 3대0으로 이기는 기적을 썼다. 1·2차전 합계 4대4 동점이지만 원정 다득점 원칙에 따라 로마가 준결승 티켓을 잡았다. 1983-1984시즌 이후 34년 만의 챔스 4강. 34년 전 로마는 결승까지 올라 승부차기 끝에 리버풀에 패했는데 어쩌면 올해 결승에서 리버풀을 다시 만날지도 모르겠다.
로마의 영웅은 ‘보스니아 폭격기’ 에딘 제코였다. 전반 6분 미드필드에서 날아온 공을 절묘한 트래핑 뒤 선제골로 연결한 제코는 후반 13분에는 수비를 등지고 전진하다 페널티킥을 얻었다. 다니엘레 데로시가 넣어 2대0. 후반 37분에는 수비수 코스타스 마놀라스가 코너킥을 머리로 돌려놓으며 ‘4강 합격선’인 3대0을 만들어놓았다. 제코는 1차전에서도 1대3으로 따라가는 골을 넣었는데 그 한 골이 원정 다득점에 따른 4강 진출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1차전 패배 뒤 로마가 4강에 올라갈 확률은 5%라는 얘기를 들었다. 우리는 믿기 어려운 일을 아주 멋지게 해냈다”며 “90분간 위대한 팀워크를 보여준 우리 팀이 자랑스럽다. 4강에서 누구와 만나든 두렵지 않다”고 했다.
로마는 32강 조별리그에서 첼시·아틀레티코 등과 죽음의 C조에 묶였을 때 조별리그 통과조차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러나 당당히 1위로 통과했다. 이어 바르셀로나의 손쉬운 4강 진출 전망도 보기 좋게 깨부쉈다. 특히 올림피코 홈구장에서 챔스 5경기 연속 승리를 이어갔다. 한 골도 내주지 않고 5전 전승이다. 8강 1차전에서 자책골을 넣었던 데로시와 마놀라스는 2차전 1골 1도움과 쐐기골로 마음의 짐을 훌훌 털었다. 경기 후 일부 홈 관중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ESPN은 에르네스토 발베르데 바르셀로나 감독에게 평점 3점(10점 만점)을 매겼다. “로마의 예상 밖 공세에 4-4-2 전술에도 변화가 필요했으나 유연하지 못했다”는 지적. 이 매체는 “경기 내내 거의 보이지 않았다”는 평과 함께 메시에게도 4점의 낮은 점수를 줬다. 메시는 2015년 우승 이후 3년 연속 챔스 8강에서 짐을 쌌다. 1차전에서 4-5-1 전술을 썼던 로마의 에우제비오 디프란체스코 감독은 2차전에 3-5-2 전술로 상대 허를 찔렀다. 끊임없는 압박과 수비 뒤로 공급하는 롱볼로 대어를 잡은 로마 선수들은 감독에게 공을 돌렸다.
1차전에서 맨체스터 시티를 3대0으로 눌렀던 리버풀은 8강 2차전 원정에서도 2대1로 이겼다. 합계 5대1로 10년 만의 챔스 4강행. 리버풀은 전반 2분 만에 선제골을 내줬으나 후반 들어 모하메드 살라와 호베르투 피르미누의 연속골이 터졌다. 살라와 피르미누는 올 시즌 챔스에서 나란히 8골을 넣고 있다. 살라는 모든 경기를 통틀어 39골 11도움으로 올 시즌 공격 포인트 50개를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