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시샘하는 비가 남도로 향하는 발길을 잡았다. 집을 나설 때부터 부슬부슬 내리던 비는 충청도로 진입하자 굵은 줄기가 돼 차창을 두드렸다. 와이퍼가 좌우로 움직이며 시야를 확보했지만 내 마음은 시계(視界)처럼 맑아지지 않았다. 빗줄기가 벚꽃들을 떨어뜨릴까 봐 조바심이 났기 때문이다. 보성군청에 들러 지도와 안내책자를 챙긴 후 향한 곳은 대원사다. 대원사로 가는 길가에 벚나무 가로수가 많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군청에서 이곳으로 가는 벚꽃 길의 조밀함은 꽃 아래에 파묻히고 나서야 그 규모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을 정도다.
돌이켜보면 벚꽃의 개화를 보고 나서 여행 글을 써 본 적이 없는 듯하다. 항상 망울이 솟아 올라올 때쯤 서둘러 꽃구경을 떠나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활짝 핀 벚꽃을 본 다음에 기사를 쓰면 신문을 읽는 독자들은 벚꽃이 질 무렵에야 현장에 도착해 뒷북을 칠 수밖에 없는 탓이다. 그래서 항상 꽃망울은 기자의 몫이고, 벌어진 벚꽃은 독자들의 몫이었다.
그런데 올해에는 화신(花信)이 빨랐다. 화신이 빨라서인지 벚꽃은 동백과 개나리·진달래와 함께 피었다. 화신이 화신을 쫓는 여행기자들을 앞서 나갔다. 보성도 예외는 아니었다. 산기슭에는 성긴 진달래가 비바람에 흔들렸고 개나리는 노변을 장식했다.
이런저런 봄의 전령 중 보성의 벚꽃이 본색을 드러낸 곳은 문덕면에 들어서면서부터다. 18번 도로를 따라 대원사로 가는 동안 주암호를 건너는 죽산교·주암교 갓길을 제외하면 벚꽃길이 끝없이 이어졌다. 특히 군립미술관 입구에서 대원사까지 3.5㎞ 구간은 그야말로 벚꽃이 터널을 이룬다.
벚꽃의 밀도는 모르겠으나 벚꽃 길의 길이만큼은 하동 쌍계사 십리벚꽃길 못지않다. 죽산리 대원사 벚꽃길은 지난 1980년에 조성했는데 2004년 제5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입상을 하기도 했다. 이 글을 읽고 대원사를 찾을 경우 벚꽃은 끝물이거나 파장이겠지만 내년을 기약한다면 결코 실망하지 않을 코스다.
꽃길을 달려 도착한 대원사는 비에 젖어 물을 흠뻑 머금고 있었다. 절로 들어서자 기자를 먼저 맞는 것은 수많은 동자불들. 이 절의 옛 주지 현장스님이 태어나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한 아기들을 위해 천도제를 지내면서 조성된 것들이다.
대원사는 6·25동란 전까지만 해도 10여동의 건물들이 남아 있었으나 여순사건 때 극락전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소실되고 말았다. 조선사찰사료에 의하면 신라 지증왕 때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지은 절로 고려 때에는 원오국사(圓悟國師)가 중건했고 조선조로 넘어와 영조 43년에 중건됐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국가지정문화재인 대원사 인근에는 ‘티벳박물관’이 있어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읍내로 돌아오는 길에는 대한다원에 들렀다. 대한다원은 150만평 규모로 국내 유일의 차(茶)관광 농원이다. 한반도 끝자락에 위치해 바닷바람을 맞고 있는 보성은 기온이 따뜻하고 습도와 온도가 차 재배에 알맞다. 대한다업관광농원은 1957년 이 같은 조건을 검토한 끝에 이곳에서 차 재배를 시작,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차밭으로 가꿔놓았다.
추위가 맹위를 떨쳤던 지난해 보성도 예외는 아니어서 많은 차나무가 동해를 입었다. 이맘때면 초록빛을 띠어야 할 찻잎들이 갈색으로 변색돼 안타까움을 더했다. 사설 농원이며 입장료는 성인 4,000원, 단체(20인 이상) 3,000원, 초·중·고생은 3,000원을 받고 있다. 보성군 보성읍 녹차로 763-65
보성 맛집인 ‘보성관’은 군청 앞에 있는 한식당이다. 보성에 도착하기 전에 사전조사를 통해 알게 된 업소로 메뉴는 삼겹살과 생선구이 백반 등이 있다. 기자는 6,000원짜리 생선구이를 먹었는데 가격에 비해 반찬 숫자가 많을 뿐 아니라 맛도 정갈했다. 생선은 보통 크기의 고등어와 작은 굴비가 상에 올랐다. 큰 기대 없이 찾았는데 가격 대비 만족도로 따지면 높은 점수를 줄 만한 했다. 보성읍 송재로 161-3. (061)852-2700 /글·사진(보성)=우현석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