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산 의료기기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부처별로 산재했던 연구개발 업무를 총괄하는 조직을 설립한다. 중복투자를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취지이나 선진국과 동떨어진 규제부터 없애는 것이 급선무라는 지적이다.
보건복지부는 12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와 함께 오는 2020년 출범을 목표로 ‘범부처 전주기 의료기기 연구개발사업단’(가칭) 설립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사업단은 정부의 의료기기 연구개발 지원을 전담하며 출범 후 10년 동안 3조원의 예산을 투입한다.
그간 업계에서는 의료기기 연구개발에 대한 지원창구를 일원화해 국산 의료기기의 글로벌 진출을 앞당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돼왔다. 기초기술 연구(과기정통부), 제품화(산업부), 임상시험 및 사업화(복지부)로 사업주체가 나뉘다 보니 예산이 중복되고 기간도 오래 걸리는 문제점이 잇따랐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신설되는 사업단은 부처별 개별 지원에 따른 한계를 극복하고 국가 차원에서 국산 의료기기의 연구개발과 사업화를 지원하기 위해 3개 부처가 힘을 합친 결과물”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업계는 의료기기에 대한 정부 차원의 연구개발 지원도 중요하지만 선진국에 비해 지나치게 까다로운 규제부터 손질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의료기기 제조사가 시장에 제품을 출시하려면 식품의약품안전처, 한국보건의료연구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심사를 차례로 거쳐야 한다. 각 기관별 심사를 통과하기까지 걸리는 시간도 문제지만 충분한 경쟁력을 갖췄음에도 신의료기술로 인정받지 못하거나 낮은 보험수가를 받아 국내 출시를 포기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의료기기 벤처기업인 알로텍은 지난 2015년 세계 최초로 일회용 핸드피스(인공관절 수술용 의료기기)를 개발했지만 아직 제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식약처의 허가를 받았지만 심평원이 효능 검증에 시간이 필요하다며 보험수가 책정을 미루고 있어서다. 세계 첫 그물형 깁스를 개발한 오픈엠과 의약품 주입용 펌프를 개발한 메인텍도 신기술을 접목한 의료기기를 뜻하는 신의료기기 인증을 받지 못해 국내 판매를 접었다.
글로벌 의료기기 시장은 폭발적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영국 시장조사업체 테크내비오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의료기기 시장은 3,400억달러 규모로 성장해 1조3,000억달러 수준인 글로벌 의약품 시장의 25%를 넘어설 전망이다.
하지만 글로벌 의료기기 시장에서 한국의 위상은 초라한 수준이다. 미국이 43.2%의 점유율로 시장을 주도하는 가운데 일본(2위·8%)과 중국(4위·5.5%)도 의료기기 벤처기업의 선전에 힘입어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국산 의료기기의 점유율은 1.7%로 9위에 불과하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기술(IT) 경쟁력과 제조업 역량을 갖춘 한국이지만 정작 의료기기 시장에서는 각종 규제에 가로막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며 “오스템임플란트(048260), 삼성메디슨, 인바디(041830) 같은 국내 의료기기 전문업체들이 존슨앤드존슨, GE, 지멘스, 필립스 같은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다각적인 지원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