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보험

[미래 못읽는 답답한 보험규제] IFRS17대비 해외債 늘려야하는데...국회 뒷짐에 인텔 회사채도 못사

<하>발묶인 해외투자 규제 완화

투자비중 제한 폐지 보험업법 개정안 10개월째 표류

수익률 높이려 장기채권 매입 보험사 한도 턱밑 육박

업계 "골든 타임 놓칠라...국회, 서둘러 통과시켜야"




인텔이나 아마존과 같은 글로벌 기업의 회사채에 투자하려던 국내 대형 보험사의 자산운용 담당자는 황당한 경험을 했다. 해외 기업의 회사채에 대해서는 규정상 아무리 우량 기업이어도 과도하게 위험평가를 하도록 돼 있어 지급여력비율(RBC) 산정 시 국내 기업의 해외채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리하다는 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 담당자는 “국가 신용등급에 맞먹을 정도로 굴지의 해외 기업들인데 국내 대형사보다 불리하게 등급을 적용하는 것은 불합리한 것 아니냐”면서 “자국 중심 마인드에서 벗어나 글로벌 시각에서의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험업계가 오는 2021년 새 국제회계기준(IFRS17)과 시가평가 기반의 재무건전성제도(신지급여력제도·K-ICS) 도입을 앞두고 자본확충과 재무구조 개선을 추진하고 있지만 해외 투자 규제에 발목을 잡혀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 개정안이 10개월 넘게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보험업법 제106조나 보험업감독업무시행세칙 등이 대표적이다.


보험업법 제106조는 보험사의 해외유가증권 투자 비중을 일반계정 총자산의 30%(특별계정은 20%)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금융위원회에서 2015년 ‘보험산업 경쟁력 강화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이 같은 제한을 없애겠다고 약속하고 지난해 5월 국무회의에서 보험업법 일부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국회 문턱에서 브레이크가 걸렸다. 정무위 법안소위도 통과하지 못한 채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또 보험업감독업무시행세칙에서는 보험사들이 해외 회사채에 투자할 때 해외 신용등급을 국내 신용등급으로 환산해 RBC를 산정하도록 하고 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의 신용등급을 국내 신용평가기관 전환등급으로 전환할 경우 3등급을 높인다. 하지만 S&P의 신용등급 기준이 국내 신평사에 비해 훨씬 엄격한 점을 감안하면 3등급 상향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보험업계의 지적이다. 보험업계에서는 최소 5등급은 올려야 해당 기업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규제를 풀어준다는 정부 약속만 믿고 있던 보험사들은 비상이 걸렸다. 최근 몇 년 동안 자산운용 수익률 제고 차원에서 해외 투자를 늘려왔더니 이제 해외 투자금액이 법적 한도의 턱밑까지 찼기 때문이다. 특히 IFRS17이 보험업계의 최대 현안으로 부상하면서 해외 장기채권 투자 수요가 더욱 커졌는데 해외투자 제한 때문에 꼼짝달싹할 수 없게 됐다. 미국이 금리 인상에 속도를 내고 있는 만큼 조금이라도 빨리 해외 투자에 나서야 차익을 키울 수 있는데 법 개정이 미뤄지면서 투자 적기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금리가 올라가면 자금 조달과 자산 투자에 드는 비용도 함께 커지기 때문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개정법안이 언제 국회를 통과할지 몰라 투자전략을 어떻게 수립해야 할지 고민”이라면서 “입법 과정이 지연되면서 시장 불확실성만 키우는 등 부작용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험사들은 IFRS17과 RBC를 적용할 때 금리변동에 따른 자산과 부채의 변동폭이 작아야 자본 변동성에 미치는 영향이 줄어들기 때문에 만기가 긴 장기채권 투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국내 장기채권의 경우 국민연금 등 큰손들이 대부분 거둬가기 때문에 보험사가 매입할 수 있는 채권 규모는 한계가 있다. 국내 장기채권보다 해외 장기채권의 수익률도 높아졌다. 이 때문에 보험사들은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지만 이미 상당수의 보험사가 법적한도의 80% 가까이 도달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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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생보업계의 총운용자산 656조2,111억원 가운데 해외유가증권은 87조1,978억원으로 13.3%를 차지했다. 해외 투자 비중이 5년 전인 2012년만 해도 4.6%에 불과했으나 3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특히 IFRS17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2016년 이후 해외유가증권 비중의 확대 속도가 급격하게 빨라지고 있다.

업계 평균으로 보면 투자 한도인 30%까지는 어느 정도 여유가 있어 보이지만 개별 회사별로는 편차가 크다. 특히 한화생명(24.1%), 교보생명(19.3%), 미래에셋생명(21.1%), 동양생명(22.4%), NH농협생명(20.2%) 등 대형사들이 20%를 넘어선 경우가 많다. 이 정도만 되면 평가 시점 등에 따라 비중이 달라지는 등 변동성 등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해외 자산에 추가로 투자하기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수준이라고 보험업계는 하소연하고 있다.

다른 나라들의 경우 보험사들의 해외 투자 등 자산운용 규제를 점진적으로 완화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유럽연합(EU)이나 호주 등은 우리나라와 달리 사전 규제 없이 일단 자산 취득을 허용한다. 이후 특정 자산 등에 투자가 집중되는 리스크는 RBC를 통해 규제하는 사후·간접적 규제를 택하고 있다. 예를 들어 EU는 신용등급 BB 이하 익스포저가 자산의 1.5%를 초과하면 추가적 집중 리스크 요구자본을 부과해 RBC에 반영한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비슷하고 보험사가 투자할 수 있는 자산을 열거하고 일정한 한도를 각각 부과하는 사전·직접적 규제를 했으나 지난 2012년 부동산이나 외국환 등 개별 자산에 대한 직접한도를 폐지했다.

생명보험협회 관계자는 “보험업계가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해외투자 확대가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보험사들은 해외투자 확대를 통해 글로벌 자산 운용 경험을 축적할 수 있으며 이는 보험산업의 수익성 제고와 더불어 장기적으로는 해외 진출의 중요한 발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보험사들이 해외투자를 늘리면서 리스크도 커질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비할 필요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영현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보험사들이 해외 장기 국채 및 회사채의 비중을 확대할 경우 해외신용 및 외환리스크가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감독 당국도 보험사들의 장기채 및 해외채권 투자 쏠림 현상에 의한 시스템 리스크 확대 가능성 등을 더욱 면밀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노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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