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난성 산야시 항구 전경 /블룸버그
“개혁개방에서 태어나 개혁개방으로 흥한 곳이 바로 하이난이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이후 하이난은 폐쇄적이고 낙후된 변방도서에서 중국에서 가장 개방적이고 활력이 넘치는 지역 중 하나로 발전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13일 하이난 경제특구 건설 30주년 기념식에서 하이난에 중국 특색 자유무역항 건설을 정식으로 선언했다. 시 주석은 이 자리에서 “당 중앙은 하이난에 자유무역실험구를 건설하기로 했고 이를 지지한다”며 “단계적이고 안정적으로 중국 특색 자유무역항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번 결정은 경제 세계화에 관한 중대한 조치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라며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생동감 있는 사례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이미 지난 10일 세계 정상급 지도자와 재계 인사들이 모여든 중국 하이난성 보아오포럼장에서 시 주석은 하이난을 ‘개혁개방의 전초지’로 삼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시 주석의 이날 선언으로 하이난은 중화인민공화국 출범 이후 중국 본토에 들어서는 첫 ‘중국 특색의 자유무역항’의 영예를 안게 됐다.
홍콩의 뒤를 잇는 신자유무역항 설립계획이 처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0월, 시 주석이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 보고에서 상하이 등 11개 자유무역시험구 개혁 강화와 새로운 자유무역항 설립 필요성을 언급하면서부터다. 이후 금융시장에서는 상하이가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됐지만 중국 정가의 분위기는 조금 달랐다. 지도부가 몰려 있는 베이징 중난하이에서는 시 주석이 집권 1기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 사업과 맞먹는 새 국책 프로젝트를 통해 자신의 절대권력과 집권 연장의 토대를 쌓을 것이라는 관측과 함께 일대일로의 성과를 한층 부각시키고 미국을 견제하는 효과까지 얻을 수 있는 하이난성이 급부상했다.
국내에 ‘중국의 하와이’로 잘 알려진 휴양섬 하이난은 사실 중국 입장에서 정치적·전략적 의미가 큰 곳으로 시 주석이 정치적 롤모델로 삼고 있는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의 후광을 가장 극적으로 부각할 수 있는 곳 중 하나로 평가된다. 하이난은 마오쩌둥의 공산당이 본토를 장악하면서 1950년 광둥성에 귀속돼 1988년 경제특구로 지정된 뒤 22번째 성으로 승격됐다. 특히 이곳에 대한 시 주석의 각별한 애착은 중국인들에게 1992년 덩샤오핑의 ‘남순강화(南巡講話)’를 떠올리게 한다. 1989년 톈안먼 민주화시위 이후 국제사회와 중국 내에서 개혁개방 기조가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자 덩샤오핑은 직접 상하이와 선전을 방문하며 개혁개방 확대의 고삐를 조였다. 시 주석이 하이난을 개방 확대와 자유무역항 조성의 중심지로 삼은 것은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을 넘어 자신의 이름을 중국 역대 최고지도자 반열에 올리겠다는 속내를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하이난성을 신개혁개방 정책의 시험대로 삼으려는 의지에는 덩샤오핑이 이루지 못한 하이난성 경제특구를 완성하는 의미도 담겼다. 덩샤오핑은 1988년 하이난을 중국 최대 경제특구로 지정했지만 특구 지정 후 5년여 만에 부동산 가격만 3배 이상 뛰며 경제발전 성과를 내지 못하자 1993년 개발 실패를 인정하고 지원계획을 철회했다. 또 다른 경제특구인 선전이 중국 스타트업의 산실이자 신경제의 심장으로 자리 잡으며 급성장한 것과 대조를 이룬다. 하이난 경제 규모는 1988년 77억위안으로 선전의 88.6%에 달했지만 지난해에는 20% 수준으로 추락했다.
시 주석의 이번 신개혁개방 정책 강화 선언으로 경제특구 지정 30년이 되는 하이난은 다시 한번 도약의 기회를 맞는 분위기다. 당장 보아오포럼에서 선샤오밍 하이난성장은 오는 2030년까지 하이난 전 지역을 신에너지 차량만 운행하는 도시로 성장시키겠다고 발표했다. 관광진흥을 위해 외국계 호텔에 대한 세제 지원과 도박산업 허용도 검토하고 있다. 국무원은 보아오진에 자리 잡은 러청국제의료관광시범구에 대한 의료관광 지원사업을 확정하고 현지 의료기기와 의약품 수입 규제를 크게 완화하기로 했다.
다만 국제사회에서는 하이난에 대한 시진핑 지도부의 관심이 중국 패권주의 확장과 맞물려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시선이 많다. 무엇보다 중국 최남단인 하이난섬이 주변국과의 영토분쟁은 물론 미국과의 무력대치가 잦은 남중국해의 군사지원기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실제 중국이 핵심이익으로 여기는 남중국해상의 시사군도·난사군도·중사군도는 모두 하이난성 관할이다. 하이난성은 또 시진핑 1기 최대 역점사업인 일대일로 중 해상 실크로드를 지칭하는 일로(一路)의 핵심 경유지이기도 하다.
시 주석이 12일 하이난 남쪽 남중국해 해상에서 1949년 중국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해상 열병식을 열어 군사력을 과시한 것도 심상치 않은 대목이다. 시 주석은 이지스구축함인 창사함 함상에서 한 연설을 통해 “중화민족의 부흥으로 가는 과정에서 강대한 해군이 지금처럼 절박하게 필요했던 적이 없었다”고 역설했다.
베이징의 한 외교소식통은 “집권 1기 일대일로에 주력했던 시 주석은 집권 2기에 이른바 시진핑의 도시로 불리는 베이징 남부 슝안신구 개발과 함께 자유무역항 건설이라는 천년대계 성과사업에 박차를 가하며 집권연장 토대를 마련하는 데 나설 것”이라며 “남중국해 거점 하이난성에는 미국 패권주의에 대항하는 상징 지역의 의미가 부여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베이징=홍병문특파원 hbm@sedail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