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김기식 거취 ‘관행’으로 판단하겠다는 文 대통령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에 대한 사퇴 압력이 거세지자 문재인 대통령이 서면 메시지를 내놓았다. “과거 행위 중 위법이라는 객관적 판정이 있으면 사임토록 하고 피감기관 지원 해외 출장이 당시 국회의원들의 관행에 비추어 도덕성에서 평균 이하로 판단되면 물러나게 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그러면서도 “관행이었다면 야당의 비판과 해임 요구는 수긍하기 힘들다”는 첨언을 달았다. 야당의원들도 비슷한 출장을 다녀왔으니 김 원장만 문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완곡한 표현이다. 김 원장 거취 문제를 정면돌파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이번 메시지에서 김 원장의 거취를 ‘관행’을 기준으로 판단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국민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김 원장을 수렁으로 몰아넣은 피감기관을 통한 외유성 출장과 후원금 처리 관행은 그냥 ‘관행’이 아니라 영원히 사라져야 할 ‘적폐’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아직도 부정과 부패가 사라지지 않고 악취를 풍기는 것도 수십 년 동안 누적된 병폐를 없애지 못하고 방치한 결과다. 다른 국회의원들도 다 그랬으니 김 원장 역시 그냥 넘어가도 된다는 식의 접근은 대통령이 그토록 외쳤던 적폐 청산을 포기하겠다는 의미와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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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은 지난해 취임식에서 “구시대의 잘못된 관행과 과감히 결별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렇다면 김 원장은 왜 결별 대상이 안 되는지 설명이 필요하다.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는 대통령이 되겠다”고도 했다. 국민 절반 이상이 반대하고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을 제외한 정치권이 일제히 사퇴를 촉구하는 금감원장을 감싸는 것은 누구의 눈높이일까.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다짐은,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겠다”던 맹세는 또 어디로 갔는가.

이 질문들에 명확한 대답을 내놓지 못한다면 문 대통령은 김 원장을 내려놓아야 한다. 김 원장을 이대로 품에 안고서는 순탄한 국정운영을 기대하기도, 국민에게 가까이 다가가 따뜻하고 친구 같은 대통령이 되겠다는 다짐도 지키기 힘들다. 뜻을 같이하는 이를 버려야 하는, 손발이 잘리는 듯한 아픔이 있겠지만 북핵 비핵화와 개헌을 비롯한 산적한 현안을 풀고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더 이상 결단을 미뤄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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