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지출만큼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의 제한을 받지 않도록 예외 조항 신설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지난 2월 제10대 한국메세나협회 회장으로 취임한 김영호(74·사진) 일신방직 회장은 18일 한국프레스센터 매화홀에서 열린 취임 기념 기자 간담회에서 “청탁금지법 시행 후 많은 기업이 문화예술 관련 사업을 축소하거나 중단하면서 국민의 문화예술 향유 기회가 줄어든 것은 물론 문화예술인에 대한 간접 지원 기회도 사라지고 있다”며 “예술후원 목적의 티켓 구입은 아예 법 적용에서 제외하거나 선물 구입 한도를 10만원으로 인상하도록 법 개정을 적극 건의하겠다”고 말했다.
협회가 지난해 회원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 따르면 청탁금지법 시행 후 응답 기업의 23.8%가 2016년 하반기 문화예술 지원과 관련한 지출을 축소하거나 중단했다고 답했으며 지출금액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답변이 17.7%를 차지했다.
김 회장은 “클래식이나 오페라 공연 대부분은 전 좌석을 판매해도 적자를 보는 경우가 많은데 기업 후원이 줄어들면 더 이상 양질의 공연을 유치할 수 없게 된다”며 “특히 상당수의 기업이 지역사회의 문화 향유 증진을 위해 다양한 문화예술 행사를 후원하는데 지금으로서는 청탁금지법에 저촉될 소지가 많아 활동에 제약이 크다”고 토로했다.
이날 김 회장은 취임 일성으로 문화접대비 활성화를 내세웠다. 문화예술후원 활성화에 관한 법률, 지역문화진흥법 등 관련 법에 따르면 공연, 전시, 도서 구입 등의 문화예술 분야에 접대비를 지출할 경우 접대비 한도액의 20%를 추가로 손금 산입하는 혜택이 있지만 접대비 신고 기업의 문화접대비 지출 실적은 전체 접대비의 0.1%에도 미치지 못한다. 김 회장은 “취임하고 보니 일신방직마저도 문화접대비 제도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더라”며 “모든 기업이 문화접대비를 적극 활용해 예술소비 활성화, 건전한 기업 접대문화 조성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오는 7월부터 순차적으로 시행되는 52시간 근로제도에 대해서도 그는 “하루 3교대씩 24시간 공장을 돌려야 하는 기업인의 입장에서 최저임금 인상까지 겹쳐 부담이 느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임직원들이 퇴근 후 더 많은 여유 시간을 문화예술 활동에 활용한다면 문화예술계에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스스로 ‘메세나 전도사’를 자처하는 김 회장은 “기업이 예술을 지원하면 기업의 이미지와 인지도가 좋아지고 기업에 근무하는 임직원의 충성도도 높아진다”며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중견기업도 메세나 활동에 적극 나설 수 있도록 외연 확장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국내 기업인들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예술 애호가인 김 회장은 연세대, 뉴욕 프랫인스티튜트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것을 계기로 미술·음악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됐고 1970년대부터 미술품을 꾸준히 구입했다. 서울 한남동과 여의도 사옥 로비에 한국 추상화의 거장인 정창섭·박서보·이우환 등의 그림으로 작은 미술관을 꾸몄고 김 회장이 직접 큐레이터가 돼 다양한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1989년 일신문화재단을 설립한 후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국내 연습실로도 잘 알려진 현대음악 전문공연장 ‘일신홀’을 2009년 세웠고 2011년에는 일신작곡상을 신설해 현대음악의 저변 확대에 기여했다. 현재 예술의전당 이사, 뉴욕 현대미술관 인터내셔널 카운슬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007년에는 몽블랑 예술후원자상을 받았고 지난해에는 보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김 회장은 “보유하고 있는 그림을 국공립 미술관에 기증해 ‘일신컬렉션’이라는 명칭으로 교환전시를 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일신홀의 경우 국내 공연계에서는 드물게 연주되는 20세기 현대음악을 들려줄 수 있는 공간으로 특색을 갖췄다”고 소개했다.
한편 2003년부터 한국메세나협회 부회장으로 활동해온 김 협회장은 2월 열린 협회 정기총회에서 새 수장으로 선출됐다. 그의 임기는 2021년 2월까지 3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