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에서 1959년 혁명 이후 처음으로 ‘카스트로’라는 성을 쓰지 않는 지도자가 탄생하고 ‘혁명 후 세대’가 집권하게 됐다. 이른바 ‘포스트 카스트로’ 시대가 막을 올리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집권 후 틀어진 대미 관계와 허덕이는 자국 내 경제 성장 등 산적한 과제를 어떻게 해결해나갈지 주목받고 있다.
쿠바 전국인민권력회는 18일(현지시간) 라울 카스트로(86) 국가평의회 의장의 뒤를 이을 후계자로 미겔 디아스카넬(57) 국가평의회 수석 부의장을 단독 추대했다.
국가평의회 의장은 국가수반으로 지난달 선출된 인민권력회 의원 605명은 이날 오후부터 비밀 투표를 거쳐 라울 현 의장의 후임자로 추대된 디아스카넬을 인준한다. 최종 투표 결과는 19일 공식 발표될 예정이지만 투표는 요식절차에 불과해 사실상 디아스카넬이 새 쿠바 국가수반으로 선출될 것이 확실하다.
라울의 퇴진은 쿠바에서 59년 만에 카스트로 성을 쓰지 않는 첫 국가수반이 탄생하고, 카스트로 형제의 통치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의미한다. 라울은 지난 12년간 국가수반 역할을 해왔다. 2006년 병으로 1959년 혁명 이후 47년 만에 권좌에서 물러난 피델 카스트로(2016년 사망) 전 의장으로부터 의장직을 임시로 물려받았다. 이후 2008년 공식적으로 의장으로 선출됐다. 2011년에는 공산당 총서기로 선출돼 당정을 아우르는 권력의 최고 정점에 올랐다.
다만 라울은 퇴진 이후에도 국민과 군부의 지지 등을 토대로 ‘그림자 정치’를 펼칠 것으로 전망된다. 라울이 통치 일선에서 물러나지만 2021년까지 공산당 총서기직을 맡기 때문이다. 새 의장이 일상적인 결정을 내리겠지만, 라울이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며 거시적인 정책을 사실상 좌지우지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새 국가수반으로 단독 추대된 디아스카넬은 지난 5년간 라울 의장 곁을 지켜온 오른팔이다. 지금까지 공식적인 후계자 관련 언급이 없었지만 라울이 디아스카넬을 수석부의장으로 직접 낙점한 터라 권력 승계가 예상됐다.
개혁·개방에 긍정적이며 실용주의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진 디아스카넬은 1959년 쿠바 혁명 이듬해인 1960년 태어났다.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교수로 재직하다가 33세 때인 1993년 공산당에 가입했으며, 2009년 고등교육부 장관, 2013년 국가평의회 수석부의장에 선출됐다. 로큰롤을 좋아하고 청바지를 즐겨 입는 비틀스 팬으로 알려진 그는 쿠바 인터넷 접속환경 개선을 추진한 데다 동성애자 권리 옹호 등 기존 지도부보다 개방적이고 실용주의적인 성향을 보여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