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수시전형(학생부종합전형)이 ‘깜깜이·금수저 전형’으로 불리며 공정성 시비가 일었다. 최근 교육부가 대학 측에 수시의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없애고 정시를 확대하라고 요구해 논란이 일면서 정시·수시 적정 비율 문제가 재부상하는 모양새다. 교육부는 지난 11일 발표한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 시안 보고서에도 정시 축소의 속도 조절을 위한 정시·수시 적정 비율을 논의사항으로 담았다. 2019학년도 대입전형의 경우 수시·정시전형 비율이 8대2까지 벌어진 상황이다. 정시 확대 찬성 측은 가장 공정한 시험인 수능성적 선발을 늘려 수시 경쟁에서 밀려난 학생들에게 재도전 기회를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대 측은 수능이 이미 선발시험 기능을 상실했으며 올바른 인재 선발을 위해 오히려 정성적 평가를 더 늘려야 한다고 반박한다. 양측의 견해를 싣는다.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입 정시 확대론이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선거철만 되면 입시로 인해 피로감을 느끼는 국민들을 상대로 한 줄 세우기라는 달콤한 유혹으로 현혹하는 행태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막연하게 효율적이고 공정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시험으로 한 줄 세우기가 실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21세기에 시작된 7차 교육과정부터 고등학교에는 선택형 교육과정이 전면 도입됐다. 한 교실에서 똑같은 선생만 만나던 과거의 기억으로 오늘날의 학교를 생각하고 입시제도를 상상하면 큰 오류를 범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여기에 고교학점제를 전면적으로 추진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표준적으로 나열된 교과목들에서 학생이 선택하는 것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교사가 창의적으로 소수의 학생을 대상으로 ‘과제연구’와 같은 전문적 교과목을 수업하는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수능은 이미 선발시험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해가고 있다. 어떡하든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표준점수로 선택과목들의 편차를 보정하고 정답률(정답으로 맞힌 비율)이 20%도 안 되는 고난도 문제를 출제해 억지 줄 세우기로 변별력을 확보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것이 제2외국어 선택에서 아랍어가 선풍적 인기를 끌게 되고 문과계열에서 ‘생활과윤리’가 ‘경제’보다 27배나 많이 선택되는 등 매우 기형적인 과목 선택으로 나타나고 있다. 심지어는 경제학과에 진학하는 학생이 경제를 포기하고 생활과윤리를 선택해 입학하는 현실이 현행 수능 시스템이 낳은 기현상이다.
수능 출제자들은 타당도가 높은 시험문제를 출제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을 어떻게 하면 틀리게 할 수 있는가 하는 고난도 문항 개발에 에너지를 쏟는다. 그렇게 해서 정답률 20% 미만짜리 문제를 여럿 출제해도 전 교과에서 2~3개 정도만 틀린 학생들만 일류대 합격을 바라보는 지경에 왔다. 5지선다형 문항에서 정답률이 20%가 안 된다는 것은 이 문제를 알고 푼 학생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이고 심하게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정답을 오답으로 인식했을 때만이 나올 수 있는 통계다. 갖가지 우연적 요소와 불공정성이 수능시험에 내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시에서 공정한 선발이라는 것은 애당초 존재할 수 없는 환상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능이 갖고 있는 장점을 하나 꼽으라면 부정의 소지가 완전히 사라진다는 점일 것이다. 주사위 굴리기의 혐의는 짙을지언정 우연에 의한 결정은 경쟁에서 승복을 가져오는 중요한 기제다. 교육학적으로는 수명이 다해가고 있는 수능이 여전히 국민들 사이에서 환영을 받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 해서 장점이 많은 정성적 평가에 의한 선발 시스템을 포기하는 것은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격이다. 취업에 비유하자면 정시제도는 중하위직 공무원 선발 시험과, 학생부종합전형은 대기업 입사 시험과 비슷하다. 중하위직 공무원 선발 시험이 점수로 줄을 세워 커트라인을 매기는 방식이라면 대기업 입사 시험은 학교마다 다른 잣대로 주는 학점과 자기소개서, 이른바 스펙이라 불리는 이력 등을 감안해 정성적 평가로 사원들을 뽑는다.
요즘 와서는 공무원이 될 사람들의 자질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 정성적 평가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고 실제로 고위직 공무원 선발에서는 많이 적용되고 있기도 하다. 아마 누구나 회사의 오너라면 일렬종대로 줄 세워 뽑는 방법보다는 시험은 기본 자질을 평가하는 척도로 사용하고 최종 선발은 면접도 보고 여러 이력도 살펴보는 정성적 평가를 선호할 것이다. 그게 적합한 인재를 뽑는 타당한 선발 절차이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학생을 선발하는 것도 하나도 다를 바 없다.
알파고 시대니,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해야 하느니 할 때는 획일화된 교육 시스템을 비난하다가도 입시 문제가 쟁점으로 나타나면 과거로 회귀하려는 심리가 나타난다. 이제 과거의 유산은 박물관으로 보내고 미래를 보고 입시제도를 선택해야 한다. 우리 학생들은 과거 20세기를 살아본 적도 없을뿐더러 현재에서 교육을 받고 미래를 살아갈 존재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