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루킹이라는 필명을 쓰는 민주당원 댓글 사건에서는 텔레그램 외에도 생소한 메신저가 더 등장한다. 시그널이다. 시그널은 미국 암호화 업체 ‘오픈위스퍼시스템스’가 개발한 메신저다. 미국의 국가안보국(NSA) 감청 프로그램을 세상에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이 쓰는 메신저로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탔다. 텔레그램보다 정보 보안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사용자 수가 늘고 있다. 정확한 사용자 수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다운로드 수가 500만회를 넘어섰다.
이들은 왜 ‘국민 메신저’로 불리는 ‘카카오톡’이 아닌 텔레그램과 시그널로 대화를 나눴을까. 서로 주고받은 대화내용을 감춰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문자메시지를 대체할 용도로 처음 등장했던 모바일 메신저는 소통 창구로서의 기능 외에도 끊임없이 영역을 확장하며 다양한 비즈니스를 파생시키는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지만 드루킹 사건을 계기로 드러났듯 ‘음험한’ 계책을 꾸미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시그널도 대화창 남긴 상태에서 휴대폰 압수당하면 내용 확인 가능=모바일 메신저 덕분에 삶이 편해진 것은 분명하지만 ‘음지’도 존재한다. 언제 유출될지 모르는 개인정보가 쌓이고 노출될 가능성을 늘 안고 있다. 메신저 운영사 서버에 대화내용이 저장되는 탓에 수사기관이나 해커가 확인할 위험이 있다. 물론 대화를 나눈 상대방이 내용을 공개할 가능성도 상존한다.
카카오톡 대화내용의 서버 저장 기간이 2~3일로 짧아지고 ‘비밀 채팅’ 기능도 도입됐지만 중요한 대화는 시그널과 텔레그램 같은 암호화 성능이 강한 메신저를 사용하는 분위기다. 시그널과 텔레그램은 ‘종단 간 암호화(End to End Encryption)’를 도입해 수사기관이 패킷 감청으로 메시지를 중간에서 가로채기 어렵다. 대화내용을 서버에 저장하지 않는데다 서버 자체가 국내에 없어 압수수색도 불가능하다. 반면 카카오톡은 검찰이나 경찰이 영장을 발부받아 대화내용 확인을 요구하면 서버에 저장된 2~3일치 대화내용을 제공해야 한다.
전자프론티어재단(EFF)이 2015년 작성한 ‘메신저 보안성 평가표’에 따르면 시그널은 7개 평가항목 중 7개 모두 합격 판정을 받아 가장 안전한 등급으로 분류됐고 텔레그램은 4개에서 합격 판정을 받아 안전 등급으로 평가됐다. 이들 보안 메신저는 사용자의 휴대폰에 남은 대화내용은 본인이 원하면 언제든지 삭제할 수 있다. 다만 드루킹처럼 대화창을 남겨놓은 상태에서 휴대폰을 압수당하면 수사기관이 디지털 포렌식을 통해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메신저, 모바일 관문서 커뮤니티·금융 플랫폼으로 끊임없이 진화=단순히 메시지만 전달하던 모바일 메신저는 각종 기능을 추가하면서 2000년대 들어 빠르게 성장한 포털 사이트의 영역을 넘어서고 있다. 과거 포털 사이트가 검색 기능에 더해 e메일·뉴스·카페 등의 서비스로 인터넷을 사용하려면 반드시 거칠 수밖에 없는 ‘관문’ 역할을 했던 것처럼 스마트폰에 자리 잡은 모바일 메신저가 필수적인 플랫폼이 된 것이다. 카카오톡은 대화·통화 기능뿐 아니라 간편결제·송금 서비스는 물론 검색·쇼핑·음악듣기 기능까지 갖췄다.
카카오톡의 전 세계 월 실사용자 수(MAU)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4,970만명에 달한다. 국내 MAU는 4,320만명으로 인터넷 사용 인구(4,528만명)의 95%다. 네이버의 모바일 메신저 ‘라인’의 성과는 더 놀랍다. 2011년 3월 출시한 라인은 일본과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1억6,800만명의 MAU를 확보했다.
그렇다면 모바일 메신저는 어디까지 진화할까. 메신저를 통한 ‘공동체’ 형성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화번호가 저장돼 있지 않은 상대와도 대화할 수 있는 ‘오픈 채팅’을 통해서다. 카카오톡의 전체 메시지에서 오픈 채팅의 비중은 10%를 차지할 정도로 소통창구를 톡톡히 하고 있다. 또 금융 플랫폼으로서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일찌감치 ‘라인페이’로 일본 간편결제·송금 시장을 점령한 라인은 현지 1위 금융투자 회사인 노무라증권과 합작법인(JV)을 만들어 주식 거래 서비스인 ‘라인스톡’을 준비하고 있다. 또한 대출(라인론), 보험상품 중개(라인인슈어런스), 투자 중개(라인인베스트) 등 각종 금융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