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對美 철강수출 쿼터' 극한 충돌]정부, 역풍우려 시장개입 못 해...산으로 가는 '철강물량 배분'

분배기준 '수출실적 기한' 놓고 이해관계 얽혀 다른 목소리

오픈쿼터 방식 채택·중국산 원자재 사용사에 페널티도 논란

"자율에 맡기면 답 안나와...정부가 가이드라인 줘야 풀릴 것"

경북 포항 한 철강회사 제품창고에서 작업자가 열연코일을 살펴보고 있다./연합뉴스경북 포항 한 철강회사 제품창고에서 작업자가 열연코일을 살펴보고 있다./연합뉴스



“업계 자율에 맡기면 답이 안 나옵니다.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줘야 풀릴 문제입니다.”

지난 3월 미국이 모든 수입산 철강재에 25%의 추가 관세를 물리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뒤 정부와 철강업계가 만난 자리. 추가 관세를 면제받기 위해 쿼터제를 제시할 계획을 밝힌 정부가 업계에 어느 정도까지 고통 분담을 할 수 있겠느냐고 묻자 철강협회의 한 고위관계자가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든 수출물량을 늘리기 위해 혈안이 된 업체들에 의견을 물어봐야 소용없다는 의미였다. 당장 수출길이 막힐 상황에서도 주판알 튕기기에 급급한 업체 대신 정부가 칼자루를 쥐고 명확한 지시를 내려달라는 호소이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쿼터제를 받는 조건으로 추가 관세를 간신히 면했지만 대미 수출 문제를 둘러싼 업체 간 불협화음은 여전하다. 제한된 물량을 조금이라도 더 따내기 위한 머리싸움이 물밑에서 치열하게 계속되고 있다.



수출물량을 나누려면 분배기준이 필요하다. 업체들은 그간의 수출실적으로 하되 기한을 어느 시점으로 잡느냐를 놓고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해 수출실적을 기준으로 할지, 최근 3년간의 수출실적으로 할지에 따라 업체 간 희비가 엇갈리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로부터 높은 수준의 보복관세를 부과받아 지난해 수출물량이 대폭 줄어든 업체가 있지만 그 틈을 비집고 수출량을 늘린 곳도 있다.

미국이 개별 철강재에 부과하는 관세 문제도 골칫거리다. 미국은 1년에 한 번씩 덤핑판정을 내린 철강재를 재심사한 후 관세를 다시 산정한다. 특정 회사의 철강재에 고율의 관세가 붙으면 할당 물량도 채우지 못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기본적으로 업체별로 물량을 나누되 일정 물량은 남겨둬 여력이 되는 회사가 수출하는 ‘오픈쿼터’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철강업계의 한 관계자는 “주어진 물량을 소화해내지 못하면 국가적 낭비인 만큼 오픈쿼터 방식을 채택하는 게 합리적”이라면서도 “일단 수출 가능 물량을 많이 확보하려는 업체들이 적잖아 이마저도 논쟁 대상”이라고 말했다.



다른 업체를 견제하기 위해 중국산 원자재를 사용해온 업체에는 상대적으로 더 적은 물량을 배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는 판국이어서 논의는 진흙탕으로 빠지고 있다. 미국이 무역확장법 232조(모든 수입산 철강재에 25% 추가 관세 부과)를 꺼내 든 주된 이유가 중국산 환적(換積·옮겨싣기) 수출인 만큼 화근을 만든 업체에 페널티를 가해야 한다는 얘기다.


쿼터 발효일(5월1일)까지도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지만 중재 축은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업계 자율로 결정할 문제라며 한발 물러서 있다. 업체 간 이해관계가 다른 문제에 섣불리 칼을 들이댔다가 특정 업체만 봐줬다는 등 뒷말이 나오면 곤란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정부가 섣불리 나서면 업계 입장에선 정부가 모든 문제를 좌지우지한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며 “철강협회를 통해 논의 진행 상황을 계속해서 파악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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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를 대신해 철강협회가 중재 업무를 총괄하고 있지만 한계는 분명하다. 철강협회 회장이자 업계 맏형인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구심점을 잃은 상황이다. 송재빈 상근부회장마저 물러나면서 대체 축마저 와해된 상태다. 이민철 전 산업통상자원부 자유무역협정(FTA) 정책관이 곧 부회장직에 오를 예정이지만 한평생 공직에만 몸담았던 관료 출신이 업체 간 이해관계가 첨예한 문제를 풀어낼 수 있겠느냐는 데 대한 우려가 적잖다.

논의가 답보하는 동안 불확실성만 커지고 있다. 철강업계는 제품을 주문받은 뒤 만들어 팔기까지 4개월 정도의 기간이 필요한데 향후 수출 가능 물량이 명확하지 않으니 주문을 보수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다고 호소한다. 제도 공백기를 틈타 물량을 미리 밀어내려는 움직임까지 감지된다. 쿼터에 얽매이기 전에 미리 미국으로 물량을 빼려는 행태다.

문제는 이 같은 시도가 미국의 반발을 사 또 다른 무역보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쿼터제 이후에도 밀려 들어오는 한국산 철강재에 발끈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개별 철강재에 대한 관세를 더 가혹하게 책정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근거 없는 우려는 아니다. 무역확장법 232조 면제 협상에 참여했던 정부와 철강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그전부터 물량을 조절하라는 신호를 암암리에 보냈다고 한다. 미국의 귀띔에도 강관업체 등이 물량을 쏟아내자 결국 232조를 꺼내 들었다는 것이다. 철강업계 고위관계자는 “미국이 232조에서 한국을 면제해주고 쿼터제를 준 것은 우리에게 기회를 한 번 더 준 셈”이라며 “당장 몇 푼 더 챙기려다 또 다른 화를 부를지 모르는데 답답할 따름”이라고 토로했다.


김우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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