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로 탄생한’ 현 정부의 촛불잔치가 이어지고 있다. ‘국정농단’을 종식시킨 촛불의 상징과 정통성을 거머쥐고 ‘적폐청산’의 강력한 명분으로 ‘내로남불’이나 ‘낙하산’ 비판에도 불구하고 ‘리스트 인사’를 강행하면서 ‘소득주도 성장’의 기치를 내걸고 잠시 풍성해진 나라 곳간을 열어젖힘으로써 얼핏 보기에는 바닥 민심을 잡는 데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다소 불만이 있어도 ‘적폐’의 올가미가 두렵거나 잔치 분위기 때문에 고작해야 ‘뒷말’ 수준으로 밀려나는 가운데 촛불잔치는 무르익을 대로 익었다.
한동안은 북한의 핵 위협 앞에서 주춤하는 듯했으나 마침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얼어붙었던 남북관계에 온기가 전해지고 드디어는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릴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으로 나아가는 반전(反轉)이 이뤄졌다. 이에 고무돼 현 정부는 촛불잔치를 계속 이어갈 뿐만이 아니라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촛불잔치는 끝내야 한다. 모든 것을 촛불의 이름을 빌려 하다 보니 잔치가 너무 길어졌다. 촛불은 최대공약수라야 하고 그것은 바로 국정농단의 종식이다. 탄핵으로 촛불의 사명은 완수됐다. 국정은 촛불의 손으로 넘어왔기 때문에 이후는 잔치가 아닌 엄중한 국정이어야 한다. 촛불을 내세워 벌인 그동안의 잔치는 실제 촛불 정신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통틀어 볼 때 최대공약수를 넘은 것만은 분명하다.
촛불잔치를 끝내야 할 더 중요한 점은 등잔 밑만 어두운 것이 아니라 촛불도 밑이 어둡기 때문이다. 등잔만이 아니라 촛불도 치켜들면 들수록 밑의 어둠은 더 커진다. 바람에 꺼지지 말라고 갓이나 종이컵을 씌울 때 그림자가 더욱 짙어지는 것도 마찬가지로 자연스러운 이치다.
촛불잔치가 이어진 그동안 필자는 촛불만이 아니라 밑에 드리운 그림자들에 대해서도 계속 이야기해왔다. 촛불은 밝지만 치켜들어 모든 것을 압도하려고 할수록 그 밑의 어둠이 커지고 짙어지는 것을 염려한 나머지이다. 분위기를 고조시켜 잔치를 이어가고자 하는 사람들로서는 섭섭할 수도 있었을 것이고 심지어는 논리의 도피처인 진영논리로 ‘최선의 방어’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기회에 필자는 그들이 촛불잔치를 벌이는 것은 위선적인 측면이 있음을 지적해 두고자 한다. 주지하다시피 국정농단을 단죄한 촛불시위 당시에는 어느 누가 의도적으로 조직한 시위가 아니라 자발적인 국민들에 의해 이뤄진 것이라고 공언한 사람들이 사후에는 자신들의 주도를 내세워 잔치를 벌일 독과점적인 자격이 있는 양 행세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따지고 보면 촛불 밑의 어둠도 이에서 배태된 것이다. ‘내로남불’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러한 가운데 구성된 내각마저 국정운영에서 찾아보기조차 힘든 것은 촛불 밑의 어둠 때문이다. 이렇듯 사실상의 과두지배 체제가 쏟아낸 정책들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질 수밖에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실험적 가설을 개념적으로만 확장한 현실 부정합적인 정책기조에서부터 재정 의존적인 선심성 정책들에 이르기까지 어둠이 짙게 깔려 있고 이들이 부메랑이 돼 돌아오고 있음을 다시 한 번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현실인식의 오류에 기초한 엉뚱한 정부개입도 정부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조차 구분하지 못하게 하는 촛불잔치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는 전지전능하지 않으며 과두지배 체제의 정부는 유능한 척은 잘하지만 결코 유능할 수가 없다.
늦었지만 이제는 촛불잔치를 끝낼 때다. 촛불을 내려놓아 우선 촛불 밑의 어둠부터 거둬들이자. 이왕 벌인 그들만의 잔치는 빨리 끝낼수록 국민에게 이롭고 위로 치켜든 촛불은 밑으로 내려놓을수록 자신의 그림자를 거둬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