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바이오·제약 업계에 인공지능(AI)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질환 진단에 이어 신약 개발 분야로 확산되더니 이젠 제약사의 신입사원 채용 등에까지 AI가 적용된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한미약품(128940)은 오는 30일부터 모집하는 올해 상반기 신입사원 공개 채용에 AI 면접을 적용한다. 국내 영업직에 지원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카메라가 설치된 컴퓨터 앞에서 면접을 보게 된다. 컴퓨터가 개인별 맞춤형 질문을 하면 지원자가 답을 하고 이를 AI가 목소리·표정 변화, 사용 단어 등을 분석해 평가하는 방식이다. AI 평가와 서류 등을 종합해 다음 실무진 면접 전형의 대상자를 선정한다.
한미약품 측은 “제약업계에서는 처음으로 AI로 지원자의 인·적성을 평가하는 방안을 도입했다”면서 “가장 많은 인원을 채용하는 직군인 영업직부터 먼저 적용해 서류 전형에서 결격 사유가 없는 지원자 모두가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한미약품은 국내 제약회사 가운데 영업직을 많이 뽑는 회사로 알려진 만큼 수백명의 지원자가 AI 면접을 볼 것으로 전망된다. AI 면접이 정보기술(IT) 업계를 넘어 제약 업계에도 확산될 수 있을지 주목되는 대목이다.
바이오·제약 업계에서는 면접 외에도 곳곳에서 AI를 활용한 시도들이 한창 진행 중이다. 10년 넘게 걸리는 신약 개발 과정에 AI를 도입해 시간과 비용을 줄이는 게 대표적이다. 적절한 신약 후보 물질을 찾아내고 적응증에 맞는 최적의 화합물을 조합하는 등 신약 개발 전 과정에 AI가 활약하는 방식이다. 유한양행, CJ헬스케어, 크리스탈지노믹스는 AI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을 개발한 스타트업들과 손잡고 약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대웅제약은 자체적으로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AI 플랫폼을 개발 중이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측은 “협회 차원에서 AI 신약개발지원센터를 설립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면서 “현재 17개 회원사에서 IBM 왓슨의 신약 개발 프로그램을 체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IBM의 AI의사로 알려진 ‘왓슨’을 도입한 가천대 길병원을 필두로 한 AI 진단도 최근 높은 관심을 받는 분야다. 길병원 이후 1년여 만에 부산대병원, 건양대학교병원,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 대구가톨릭대병원, 조선대학교병원 등에서 왓슨을 도입해 사용하고 있다. 의학저널, 전문자료, 임상 사례 등을 AI로 자동 분석해 대장암, 유방암, 위암 등에 걸린 환자의 치료법을 제공해주는 보조 의사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국내보다 앞서 AI를 활용해 이미 결과를 내고 있다. 지난 11일 AI가 환자의 눈 영상을 분석해 당뇨망막병증을 진단해주는 의료기기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최종 판매 승인을 받았다. 머크와 제휴하고 있는 AI 스타트업인 아톰와이즈는 AI 기술로 하루 만에 에볼라에 효과가 있는 신약 후보 물질을 2개나 발견하기도 했다.
일본에서도 산업계와 학계, 연구기관 등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AI로 신약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이 컨소시엄에 정부산하연구소인 이화학연구소와 IT 및 제약업계, 학계 등이 참여하고 있다. 일본 정부에서도 약 1,100억원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제약협회에서는 AI를 본격 도입하면 신약 1개를 개발하는 데 시간이 10년에서 3~4년, 비용은 1,200억엔에서 600억엔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