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만의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27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시종일관 환하게 웃는 얼굴과 여유 있는 걸음걸이를 유지하면서 전 세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았다.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은둔의 지도자’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정상국가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기 위해 애쓰는 듯한 모습이었다. 군사분계선을 넘어 이동하던 중 가쁜 숨을 몰아쉬기도 했던 김 위원장은 북한 최고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우리 군 의장대를 사열하는 순간에는 긴장된 표정을 숨기지 못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오전9시28분 옅은 줄무늬가 들어가 있는 검은색 인민복 복장에 어두운 색의 뿔테안경을 쓴 채 북측 판문각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건장한 북측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인 채 판문각 계단을 걸어 내려올 때만 해도 김 위원장은 ‘한국전쟁 이후 남녘땅을 밟는 북한의 첫 최고지도자’라는 역사적 순간을 의식한 듯 다소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하지만 계단을 내려와 먼저 군사분계선에서 기다리고 있던 문재인 대통령을 발견하자 금세 환한 표정을 짓는 장면이 카메라를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정전 이후 북한 최고지도자로는 처음으로 군사분계선을 넘어선 김 위원장은 우리 화동들에게 환영의 꽃다발을 건네받자 활짝 웃으며 고맙다는 뜻을 전했다. 특히 김 위원장은 화동들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다정한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과 함께 남측 회담장으로 이동하면서 특유의 ‘팔(八)자’걸음을 걸으며 여유 있는 모습을 나타냈다.
시종일관 만면에 웃음을 띠던 김 위원장도 국군 의장대를 사열하는 순간에는 얼굴에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북한 최고지도자가 우리 군을 사열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군 의장대 사열이 시작되자 김 위원장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기도 했다. 군악대의 연주가 이어지는 동안 긴장된 표정으로 레드카펫을 걷던 김 위원장은 판문점 광장에서 의장대 사열을 기다리는 동안 거수경례를 하는 문 대통령 옆에서 굳은 표정으로 부동자세를 취했다.
회담장에 들어서자 김 위원장은 여유를 되찾고 중간중간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회담장인 평화의집 1층 로비에 걸린 북한산 그림 앞에서 기념촬영을 마친 뒤에는 사진기자들에게 “잘 연출됐습니까?”라며 농담을 건넸고 이에 문 대통령과 기자단이 웃음을 터뜨렸다. 김 위원장은 회담 중간에는 북측의 열악한 교통 인프라를 스스로 거론하는 ‘솔직함’도 보였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이 북에 오면) 우리 교통이 ‘불비(不備)’해서 불편을 드릴 것 같다. 참 민망스러울 수 있겠다”며 특유의 직설적이고 솔직한 화법으로 눈길을 끌었다.
이날 김 위원장의 인민복 패션도 화제를 모았다. 인민복은 사회주의국가 지도자의 ‘상징’이다. 과거 중국 지도자들과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인민복을 자주 입었다. 김 위원장은 3월 방중 당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날 때 입었던 것과 같은 디자인의 옷을 입고 방남했다.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이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처럼 양복을 입고 나올 것이라는 관측도 있었지만 그런 예상을 깨고 인민복을 택했다.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1차 남북 정상회담 당시 회색 인민복과 갈색 점퍼를 입었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2차 남북 정상회담 때는 짙은 베이지색 야전점퍼를 입었다. 김 위원장이 인민복과 함께 뿔테 안경을 착용한 것도 지도자로서의 위엄과 권위를 고려했다는 분석이다. 서울경제신문 펠로인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남측 인사들을 대하는 김 위원장의 언행을 봤을 때 몸에 밸 정도로 상당히 준비를 많이 한 느낌”이라며 “대외에 정상국가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적극 강조하려는 계산된 행보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한편 김 위원장은 이날 종종 가쁜 숨을 몰아쉬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군사분계선을 넘어 회담장까지 걸어온 김 위원장은 방명록을 작성하는 순간에도 숨을 몰아쉬며 눈에 띌 정도로 어깨를 들썩거렸다. 2010년 9월 후계자로 공식 추대됐을 당시 90㎏이던 김 위원장의 체중은 현재 120㎏까지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