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이 확성기 같은 상호 비방 수단을 제거하기로 합의한 것도 쉬운 사안부터 풀어나간다는 공통 인식이 깔려 있다. 5월 중 개최될 장성급 군사회담 역시 평화와 종전·군축으로 가는 1단계에 해당된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 핵 문제로 인한 갈등이 풀린다면 군사당국자 간 회담도 더욱 구체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비무장지대(DMZ)와 서해북방한계선(NLL)의 평화를 위한 합의가 제대로 이뤄지면 남북은 본격적인 군비 통제의 단계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DMZ와 NLL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대목이 많아 시간이 많이 소요될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다.
합의와 상호 군축이 순조로울 경우 남북은 전방 지역에 집중 배치된 공격용 무기에 대해 ‘운용적 군비 통제(2단계)’를 거친 뒤 병력과 장비까지 줄이는 ‘구조적 군비 통제(3단계)’의 단계에 이르게 된다. 모든 단계에서 관건은 신뢰. 상호 신뢰가 수반되지 않는다면 군축을 위한 군사회담은 불신과 대립을 지루하게 확인하는 대척점의 연장선이 될 수도 있다.
더욱이 우리 군의 입장에서는 두 가지 난제가 동시에 떨어진 상황에 직면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준비 과정을 거쳐온 ‘국방개혁 2.0’의 실행을 눈앞에 두고 전개된 남북 긴장 완화로 군은 개혁 과제를 새로 짜야 할 판이다. 국방예산 자체도 크게 변할 수 있다. 북한 핵과 탄도미사일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3축 예산과 킬체인(Kill Chain) 구축에 신규 사업 예산이 집중된 터에 완전한 비핵화가 이뤄지면 군이 새로 추진하는 대다수 사업이 동력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결국 평화를 위한 군축과 국방개혁은 같은 맥락으로 추진될 수밖에 없게끔 상황이 바뀌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창군 이래 70년 가까이 ‘적과 대치’라는 환경에만 익숙해져 군으로서는 미증유의 상황을 맞고 있는 셈이다. 군 구조의 개편 과정에서 우리 사회 내부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북한과 군축 문제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한반도 비핵화라는 총론과 군축과 군비 통제, 군 구조개혁이라는 각론이 얽힌 복잡한 방정식이 기다리고 있는 형국이다.
/권홍우기자 hong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