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전체 산업 생산과 투자가 동반 하락한 것은 한국 경제의 공급능력이 부실해지고 있다는 신호다. 자동차·조선업처럼 다른 원자재·부품산업에 파급효과가 큰 전통 주력산업의 부진은 심해지는 반면 이를 만회하기 위한 과감한 산업 구조조정이나 규제 개혁은 부족한 실정이다. 이필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반도체가 그나마 호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자동차·조선·해운업 등 전반적으로 주력 산업이 부실화하고 있다”며 “공급 측면의 경쟁력 약화와 구조적 부실이 지금처럼 빠르게 진행된다면 정부가 아무리 수요 활성화를 위해 돈을 풀어도 생산 잠재력이 떨어지는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우리 경제의 외바퀴 성장을 이끌어온 수출마저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반도체 호조에도 불구하고 선박 수주잔량 급감, 자동차 수출경쟁력 약화 등으로 올해 4월 수출 증가율이 마이너스로 떨어질 가능성마저 제기된다. 이대로라면 정부가 올해 예상했던 3% 성장도 험로가 불가피하다.
우리 경제의 구조적 부실을 보여주는 또 다른 지표는 제조업 평균가동률이다. 생산능력 대비 실제 생산 비율을 나타내는 제조업 가동률은 지난달 70.3%로 전달보다 1.8%포인트 떨어졌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전 세계 경제가 몸살을 앓았던 2009년 3월(69.9%) 이후 9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올해 세계 경제가 2011년 이후 최고 성장세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국내 기업들은 부진한 수요 탓에 있는 공장 설비도 돌리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경기 적신호는 높아지는 제조업 재고율에서도 확인된다. 지난달 제조업의 출하 대비 재고 비율은 114.2%로 전달보다 2.9%포인트 올랐다. 4개월 연속 상승세다. 그만큼 팔리지 못하고 창고에 남아있는 재고가 많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재고출하 순환도를 봐도 출하는 감소폭(-2.0%→-5.1%)이 커진 반면 재고는 증가폭(9.3%→10.6%)이 더 커졌다. 어운선 통계청 산업동향과장은 “자동차·조선업 등 전방수요산업이 부진해 제조업 가동률이 전반적으로 떨어지고 있다”며 “출하가 감소하는 가운데 재고는 증가하고 있어 전체적으로 (경기가) 좋은 모습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더 큰 문제는 마이너스로 돌아선 설비투자다. 지난달 설비투자는 전달보다 기계류(-11.6%) 투자가 줄면서 전달보다 7.8% 감소했다. 5개월 만의 마이너스 전환인데 감소 폭도 2016년 7월(-8.3%) 이후 1년 8개월 만에 가장 크다. 설비투자 중에서 그나마 증가한 운송장비(3.5%)도 외국산 승용차 수입이 늘어난 결과다.
앞으로의 경기를 예측하는 지표인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지난달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100.4로 전달에 이어 또 0.2포인트 떨어졌다. 지난해 8월(101.1) 이후 올해 1월을 제외하면 계속 내림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하는 한국 경기선행지수도 지난해 11월 38개월 만에 100 밑으로 떨어진 뒤 지난 2월 99.8까지 떨어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소비 지표의 ‘나 홀로 선방’에도 전문가들은 낙관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달 소매판매는 생산·투자의 동반 하락 가운데서도 전달보다 2.7% 늘어 3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갔다. 하지만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가계의 구매력이 받쳐주지 못하고 있는데다 최근 고용지표도 좋지 않아 소비가 앞으로도 증가할 것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3월 실업률은 3월 기준 17년 만에 최고치인 4.5%를 기록했다. 주 실장은 “앞으로 건설·설비투자가 계속 둔화하고 수출 증가율도 떨어질 가능성이 커 하반기 경기 흐름이 고꾸라질 수 있다”며 “올해 3% 성장은 지금으로서는 쉽지 않다”고 우려했다. /세종=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