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뼛속까지 여성인 ‘여성화’된 여성입니다. ‘남성화’된 여성도 세상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되지만 여성화된 여성은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진민(사진) 아이소이 대표는 서울경제신문과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30일 서울 도봉구 덕성여대에서 개최한 ‘대학생을 위한 최고경영자(CEO) 특강’에서 “여성들은 ‘어떤 며느리이거나 어떤 딸이어야 한다’거나 ‘예쁘고 살이 너무 쪄서는 안 된다’ 등 자라면서 사회적 편견에 직면하는데 이런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웠으면 좋겠다”며 “자기 꿈을 희생하고 엄마가 되는 등 자신을 희생하는 일이 많은데 여성이 자신을 위해 투자하고 꿈을 위해 나아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 대표는 지난 2000년 전국의 선영이를 들썩이게 만든 ‘선영아 사랑해’를 비롯해 ‘한국 지형에 강하다, 애니콜’ 등 유명 카피를 제작한 주인공이다. 대학 졸업 후 금강기획에 입사해 몇 년째 ‘이 대리’로 근무하며 카피라이터 생활을 이어가던 그는 어느 날 자신이 후배 여직원들의 길을 막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대표는 “몇몇 여직원들이 회식 자리에서 왜 여자는 승진이 안 되냐고 묻자 상사가 ‘야, 이진민도 참고 있는데’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가 애를 낳고 안주하고 사는 게 후배들의 길을 막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내가 더 큰 기업에 승진해서 간다면 이 회사의 여직원들이 더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이직을 시도했고 제일기획에 차장으로 입사하게 됐다”고 회고했다.
어릴 적부터 겪은 성차별은 자연스럽게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그는 “초등학교 1학년 때 반장선거에서 가장 많은 표를 받았음에도 담임선생님은 여자는 반장을 할 수 없다며 부반장 마크를 줬다”며 “이후 크레용으로 ‘부’자를 지워 학교에서 혼이 났지만 아버지가 부당한 것을 수용하지 말라고 응원해준 덕분에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여성들이 일상에서 겪는 사회적 차별에 대해 이 대표는 ‘남성화된 여성’이 아니라 ‘여성화된 여성’이 더욱 잘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누군가 ‘이진민은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일을 참 잘해’라고 말하면 ‘여자는 원래 일을 잘한다’고 말했었다”며 “정말 일을 잘해서 ‘남자보다 낫다’는 식의 이야기를 들으면 좋아하고 ‘난 좀 다른 여자야’라고 생각하는 여성들도 있지만 그런 이들보다는 다른 여성과 연대할 수 있는 여성들이 우리 모두의 전진에 보탬이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 대표는 강연 내내 직원에 대한 애정을 가진 회사만이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을 설파했다. 직원들을 아끼지 않는 회사는 인재를 잃을 수밖에 없고 결국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오랜 신념이다. 이 대표는 “회사는 직원이 행복해야 한다”며 “제가 직원들에게 잘해야 고객에게도 잘할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직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반 회사에서 직원들이 결재서류를 갖고 상사를 찾아다니는 것과 달리 아이소이에서는 반대로 직원이 이 대표를 자신의 자리로 부르는 일도 많다고 말해 청중석에서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사람을 최우선으로 삼는 이 대표의 철학은 고객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 대표는 “회사가 성장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에 대한 마음이기 때문에 사람을 판매의 대상으로 삼는 회사는 오래갈 수 없다”며 “아이소이는 이 땅에 있는 화장품 회사 중에서 가장 성장하는 회사가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피부 트러블 등으로 고생하는 고객에게 화장품을 판매할 때도 수많은 상품을 한 번에 팔기보다는 정말 고객이 필요로 하는 것만 판매해야 한다는 식이다.
돈에 대한 철학도 언급했다. 그는 “돈에도 착한 돈과 나쁜 돈이 있는 만큼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라’고 하지만 이 말은 틀렸다고 생각한다”며 “기업이 크는 데는 반드시 세상의 도움이 필요한 만큼 기업도 다시 세상을 도와야 한다는 것이 저의 믿음”이라고 말했다. 그 일환으로 아이소이는 아프리카 등 제3세계 아이들 후원 등 각종 기부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이 대표는 강연 말미 취업난 등으로 인해 자조적인 모습을 보이는 청년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는 “최근 금수저·은수저 등의 이야기를 많이 하며 스스로를 제한하는데 절대 인생은 그것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며 “어려운 것만 보지 말고 어려워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이 길이 닫히면 저 길이 열린다는 믿음을 갖고 나아가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같은 여성 CEO의 열정 넘치는 강연에 덕성여대 대강의실 202호를 가득 채운 150여명의 학생들은 깊이 공감하는 모습이었다. 회계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조현영(23)씨는 “기업의 성장에만 몰두하지 않고 건강한 화장품을 사람들에게 주고 싶다는 신념을 이루기 위한 경영철학이 인상 깊었다”며 “피부가 좋지 않은 사람들을 뽑으려고 한다는 말씀을 들으며 회사 제품의 품질에 자신 있어 하는 사장님의 말에 더 신뢰가 간다”고 말했다. 취업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3·4학년 학생들은 노트를 펴고 이 사장의 강의내용을 바쁘게 적어 내려갔다. ‘나이와 전공의 벽에 스스로를 가두지 말고 꿈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취업에 목매지 말고 창업에도 도전하라’ ‘사회가 규정한 여성의 프레임에서 벗어나라’ 등의 문구가 학생들의 다이어리에 가득 채워졌다.
강의 후 문을 나서는 학생들은 취업정보를 넘어 삶의 태도를 바꾸는 기회가 됐다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으로는 이 대표가 어린 시절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은 에피소드를 꼽았다. 수학과 3학년 백경선(24)씨는 “여성으로 태어나 위축되는 삶을 살았던 것 같다”며 “어려서부터 오빠는 성공해야 하지만 너는 시집만 잘 가면 된다는 부모님 말씀을 들었는데 강의를 들은 후 자아실현의 꿈을 꿔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김연하·백주연기자 yeon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