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의 전쟁기념관에는 높이 11m의 청동조각 ‘형제의 상’이 있다. 건축가 최영집, 조각가 윤성진, 화가 장혜용이 협력제작한 것으로 국군 장교인 형과 인민군 병사로 참전한 동생이 끌어안고 있는 모습이다. 한국전쟁 당시 강원도 원주 치악고개 전투에서 이들이 총 겨눈 적으로 만난 비극의 실화가 담겨 있다. 영상·설치미술가 전준호는 이 둘을 떼어놓고 요한 스트라우스의 왈츠곡을 틀었다. 눈을 내리깔고 두 팔을 감싼 형이나, 양팔을 치켜든 동생 모두 우아한 왈츠를 추는 듯하다. 하지만 결코 만나거나 껴안지 못하고 텅 빈 공간에서 허공을 안은 채 각자의 춤에만 몰두하는 이들 형제는 우리의 분단 현실을 아프게 쿡 찌른다. 3D 영상작품 ‘하이퍼리얼리즘_형제의 상’이다.
어린이교육 전문 미술관인 헬로우뮤지움이 전쟁을 소재로 ‘반전’을 이야기하는 전시 ‘노워(#Nowar·전쟁 안돼)’를 오는 6월 25일까지 개최한다. 전준호 외에 하태범, 허보리, 일본작가 오자와 츠요시 등이 참여해 42점의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
오자와 츠요시는 ‘채소 무기(Vegetable Weapon)’ 연작을 내놓았다. 파·무·배추·버섯·당근으로 장총을 만들고 구멍 뚫린 어묵으로 조준경을, 꽁치를 얹어 총열 덮개를 만들었다. 옥수수가 날렵한 총 끝에는 빨간 비트가 수류탄처럼 매달려 있다. 전쟁이나 테러 피해국의 식재료로 무기를 만들어 사진을 촬영한 작가가 이들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함께 나눠 먹는 것까지가 작업이다.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 수 있다”는 바람을 담아서 말이다. 오자와는 한국의 김홍석, 중국의 첸 샤오시옹과 함께 작가그룹 ‘시징맨’을 결성해 활동하는 세계적 아티스트다.
하태범의 작품들은 하얗다. 미디어를 통해 접한 전쟁과 테러의 장면을 깨끗한 A4용지를 자르고 접어 미니어처로 만든 다음 총질과 폭탄이 떨어진 파괴된 도시로 보여준다. 유혈낭자하고 먼지 날리는 피해지역을 새하얗게 만든 탓에 관람객은 한발 물러나, 더욱 객관적으로 전쟁을 응시할 수 있다. 깨끗한 흰 종이는 나약한 존재를 가리키며, 통용되는 A4 규격은 ‘보편성’을 뜻해 이 처참한 장면이 누구에게나 일어날 가능성을 갖는다는 것을 암시한다.
허보리 작가는 이불, 버려진 넥타이, 양복 천으로 전쟁 무기를 만들었다. 딱딱하고 차가운 무기가 말캉말캉하고 힘없이 구부러지니 실제 전쟁은 불가능하다. 서로 대립하던 마음이 누그러질 것만 같다. “아무도 다치지 않기를 바라는” 작가는 이들 말랑한 무기를 정육케이스 안 쟁반 위에 전시했다.
전시를 기획한 김이삭 헬로우뮤지움 관장은 “지난해 해외 어린이박물관 몇 곳과 MOU를 체결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남북문제를 둘러싼 정치적 상황과 안보문제를 어린이들에게 어떻게 전달하느냐’였다”면서 “다소 어렵고 민감하고 무거운 주제지만 전쟁과 평화에 대한 인식과 생각의 틀을 우리 어린이 스스로 고민하게 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전시장 곳곳에 전쟁과 난민에 관한 책 100여권이 비치됐고, 연령대별로 90분짜리 체험 프로그램이 매일 진행된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췄지만 어른들이 더 눈여겨 봐야할 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