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IB&Deal

[주식시장, 불신에서 안심으로]의료소송 보다 힘겨운 개미군단 소송

금융기관 자료제출 거부해도

책임 물을 수 있는 방법 없어

최종판결까지 수년 걸리기도




# 지난 2007년 골드만삭스는 주택 관련 모기지증권(RMBS)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부채담보부증권(CDO) 파생금융상품 ‘애버커스(ABACUS) 2007-AC1’을 만들었다. 대형 헤지펀드인 폴슨앤드컴퍼니는 애버커스 판매 과정에 개입했고 쇼트포지션을 취했다. 쇼트포지션은 일종의 선물매도거래와 비슷한 것으로 상품가치가 하락할 때 돈을 벌 수 있다. 골드만삭스는 이를 투자자에게 알리지 않았다. 이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기초자산 채권 가격이 급락하며 폴슨앤드컴퍼니는 150억~200억달러를 벌었지만 투자자들은 10억달러 이상의 손해를 입었다.

# 2017년 미래에셋대우(006800)가 2년 전부터 판매하던 유로에셋투자자문의 파생상품이 위험회피(헤징) 실수로 70% 이상의 손실이 발생했다. 같은 파생상품의 두 번째 손실이었다. 이 상품은 코스피200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것으로 2015년 10월에도 같은 실수가 벌어져 고객들은 20%의 손해를 입었다. 금융감독원이 판매 중단을 권고했음에도 불구하고 미래에셋대우는 이후에도 2,000억원 가까이 판매했고 추가로 가입한 고객들의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두 사건 모두 파생상품의 불완전판매가 고객들에게 손해를 입혔다. 하지만 고객 손실에 대한 처리 결과는 완전 딴판이다. 골드만삭스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상품을 만들어 파는 과정에서 고객들을 속여 대규모 손실을 입혔다며 증권거래법상 사기 혐의로 제소당했다. SEC에 이어 영국 금융감독청(FSA)도 골드만삭스의 사기 혐의에 대해 조사에 착수했다. 골드만삭스는 CDO 부실판매와 관련해 5억5,000만달러의 벌금을 낸 데 이어 헤지펀드가 투자자들을 대표해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미국연방법원은 이를 허가했다.

관련기사



불완전판매에 대해 금융감독원도 SEC와 마찬가지로 2차 피해가 일어나자 미래에셋대우와 유로에셋투자자문의 검사를 시작했다. 1차 피해자들은 각각 법원에 소를 제기한 상태였다. 금융감독원의 검사에 미래에셋대우와 유로에셋투자자문은 “관련 문서가 없다”며 증거 제출을 미뤘다. 금감원은 6개월이 지난 뒤에야 미래에셋에 설명 내용 확인 의무와 부당권유 금지, 투자광고의 방법·절차 등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기관 주의 조치를 내렸다. 유로에셋투자자문 역시 원금보장상품이라고 설명한 점과 투자권유업무 위탁 부적정, 계약서 및 권유문서 기록을 없앤 점 등 8가지 사항을 이유로 투자자문업의 등록을 취소했다. 두 기관 모두 중징계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6일 서울남부지방법원은 미래에셋대우의 손을 들어줬다. 1차 피해자들이 지난해 8월 변론재개신청을 제기해 금감원의 조사 결과 등을 증거로 추가 제출했으나 세 번의 판결 시일이 밀리며 결국 원고 패소 판결을 받았다.

국내에서는 금융투자로 손해를 보더라도 소송을 진행하기가 쉽지 않다.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의료소송보다 더 힘들다는 말도 나온다. 금융기관이 자료 제출을 거부한다고 해도 책임을 물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결과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 투자자들은 피해를 봤어도 엄두를 내기 힘들다. 과거 푸르덴셜투자증권의 유상증자 과정에서 삼일회계법인이 주당 기업가치를 과대평가해 일반 투자자 2만3,000명이 손해를 입으며 진행했던 소송은 9년이 지나서야 200억원의 배상 합의를 이끌어냈다. 국내에서는 피해입증 책임을 금융기관이 지는 금융소비자보호법 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7년째 표류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일본이나 프랑스처럼 집단소송을 두 단계로 나눠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일본이나 프랑스의 경우 개별 투자자들에게 공통으로 적용되는 쟁점으로 소송을 진행해 판결을 받으면 개별 투자자들이 이를 근거로 배상요구소송을 낼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증권 관련 집단소송은 미국식을 따르고 있지만 아무런 정보도 없이 피해를 입증해야 하는 이른바 ‘깜깜이 소송’이 현실”이라며 “변호사가 재판부에 금융상품 구조를 이해시키는 데 변론의 대부분을 할애하는 등 금융 분야에 대한 법원의 이해도가 낮은 점도 개선해야 할 점”이라고 말했다.


박시진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